책에서

알렉산더 폰 쇤부르크, [세계사라는 참을 수 없는 농담], 추수밭

쭹- 2023. 5. 25. 13:46
장황하게 설명하는 것보다 요약하는 것이 더 어려운 법!
46억년의 시간을 350 쪽에 담을 수 있음이 실로 경이롭다 할 수 있다.
자신의 견해를 재치있고 쉽게 이해시켜주는 역시! 저널리스트!
 
<아름다운 도시에는 사연이 있다 - '도시'에서 멀어진 현대의 도시들>
  로마나 파리를 연상시키는 비좁은 공간들로 뉴욕은 여전히 유럽적이고 중세적인 옛 전통을 간직한 도시다. 급성장하는 우리 시대의 도시들은 그와는 정반대의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도시는 얽힘의 장소라기보다는 갈수록 분리의 장소로 변하고 있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도시인 멕시코시티, 라고스, 요하네스버그, 뭄바이 등지에서 보이는 전형적인 현상은 유기적인 공존이 아니다. 오히려 커지는 빈민촌에서 멀찌감치 떨어진 최고 수준의 보안을 자랑하는 주택지, 이른바 '빗장 동네gated communities'마저 생기고 있는 실정이다. 이제 메가시티에서는 상이한 사회계층과 사고방식이 더 이상 서로 부대끼며 마찰을 빚지 않는다. 그곳 주민들은 상호 분리된 평행우주 속에서 서로 다른 신발을 신고, 다른 쇼핑센터를 찾고, 다른 광장을 거닐며 생활한다. 우리 시대의 대도시는 너무나 비대해져서 세련되고 교양 있다는 뉘앙스를 가진 '어반urban'이라는 형용사가 무색해질 지경인 데가, 중세 도시를 특징짓는 생산적인 북적거림 같은 현상도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한없이 인간적인 인간들의 세계사 - '또라이'들의 세계사>

헤겔은 역사적 인물을 판단하는 기준에 관해 확고한 견해를 지녔다. .....역사적 인물을 결정할 때에는 그가 세계사에 얼마나 깊은 흔적을 남겼느냐는 기준을 따를 수 밖에 없다. 헤겔이 처음 사용한 개념인 세계정신(Weltgeist)은 역사가 새로운 발전 단계에 이르기 위해 특별한 개인을 이용한다는 것이 핵심 주장이다.... 중략... 헤겔에 따르면 세계가 최고의 발전 단계에 이르는 시기는 인류가 언젠가 ㅁ 먼 미래에 자신이 자유로운 존재임을 깨닫고 자유롭게 살게 될 때다. 세계를 설명하는 헤겔의 공식은 여러분이 탐닉하는 인터넷 기사들을 무색하게 할 만큼 단순하다. 헤겔에게 '세계 역사의 분류'는 간단한 3단계 프로그램으로 구서오딘다. 처음에는 한 사람만이 자유롭다는 것을 알던 '동양인들'이었고, 이어 소수만이 자유로웠던 그리스인과 로마인이 나타났고, 마지막으로 모두가 자유롭다는 것을 아는 근대 인이 등장했다. 
  헤겔에게 역사적 인물을 결정짓는 유일한 기준은 그 인물이 세상을 앞으로 나아가게 했는지, 옛것과 단절하고 새로운 것을 달성했는지에 대한 질문과 연결되어 있다. ..... 윤리적, 도덕적 관점도 그에게는 별로 중요치 않았다. 심각한 성격상의 결함도 결코 그 인물의 역사적 위대성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인이 될 수 없다. ...... 간단히 말하자면 역사를 전진시키기만 하면 '또라이'나 악당들도 얼마든지 영웅이 될 수 있다.
 
  ......사도 바울은 초기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선교자였다. 바울이 없었다면 기독교는 로마제국ㅇ에 일부 요대인 기독교 종파가 형성되는 정도로 그치면서, 대중적인 운동으로 번지지는 못했을 것이다. 1세기에는 열정에 넘치는 훌륭한 이들이 도처에 등장해 구원의 소식을 전하거나 최후의 날이 도래했음을 선포했다. 또 여러 기독교 선교자들이 큰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그런데도 우직 바울만이 대중들을 제 편으로 끌어들일 수 있었다. 왜 그랬을까?
  그로 말하자면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관리하는 네트워커, 즉 다리를 놓는 자였다. 유수한 유대 가문 출신이었던 바울은 로마 시민권을 소지한 덕분에 자유롭게 이곳저곳을 돌아다닐 수 있었다. 뛰어난 토라 교사였던 그는 스스로를 헬레니즘 전통을 이어받은 철학자라고 여기기도 했다. 이 같은 유대 및 그리스 정신의 융합에 기독교의 성공 비밀이 들어 있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그것이 일종의 정신적 폭발을 불러일으켰고, 바울이야말고 이 같은 핵융합을 일으킨 아인슈타인이라는 것이다.
  초기 기독교 공동체는 신앙심 깊은 유대인들로 이루어졌는데, 이들은 비유대인들을 일원으로 받아들이기를 원치 않았다. 하지만 바울은 이교도들을 찾아가기로 마음먹어싿. 이교도 가운데에는 특히 도시 엘리트와 식자층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들이 예수의 복음을 쉽게 받아들이도록 바울은 그 내용을 그리스 철학의 사고와 논리에 맞출 피요가 있었다. 이는 실로 엄청난 시도였다. 이로써 구약적 사고와 그리스적 사고가 처음으로 만나게 된다.
  두 번째 혁명적인 시도는 출생과 사회적 배경 또는 민족 따위가 바울의 선교에 아무런 중요성을 갖지 못한 점과 관련이 있다. 그때까지만 해도 종교는 항상 개별 종족, 기껏해야 개별 민족과 연관되어 있었다. 기독교는 하나님이 유대인과 맺은 옛 계약의 뒤를 이어 하나님이 모든 인간과 맺는 새로운 계약으로 스스로를 이해했다. 이제 각 민족과 사회계층을 포함해 인류 전체에게 유효한 최초의 보편 종교가 등장했다. 바울의 선교가 갖는 폭발력은 바로 여기에서 비롯된다. 즉 '모든 이를 위한 종교'라는 그의 구상은 종파적 근본주의에 사로잡힌 기독교인들에 대한 선전포고이기도 했다.
  세상과 접촉을 피하던 이들은 기독교를 경건하고 금욕주의적인 신자들만을 위한 배타적인 종교로 이해했다. 바울이 근본주의자 및 극단적 금욕주의자에 맞섰던 것은 순전히 신학적 고려에 따른 것이었다. 바울이 원하는 기독교의 모습은 안으로 빗장을 걸어 잠그는 대신 세상으로 나아가 아귀다툼이 벌어지는 썩어빠진 현실과 맞부딪치는 자세였다. 이로부터 어떤 세계사적 결과가 초래될지에 대해서는 그도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다.
  대다수 역사가들이 바울에게서 높이 평가하는 부분은 그가 그리스 철학과 유대교 및 기독교적 사고를 접목시켜 서로를 풍요롭게 해주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더욱 대단한 점은 무의식적으로 초래한 또 다른 효과다. 바울은 학식이 풍부한 데다 철학과 구약 사상을 흡수하면서 정확성을 중시한 인물이었지만, 동시에 신성을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감각은 머리가 아닌 가슴이라고 주장한 최초의 사람이기도 했다. 대부분의 고대인들에게 그것은 낯선 생각이었다. 이로써 바울은 생각지도 않게 개인주의를 탄생시킨 장본인이 되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신들은 저 멀리 있는 잔인하고 변덕스러운 존재로 여겨져 왔다. ...... 더 허무맹랑한 것은 신들이 인간 개개인을 알고 사랑할 수 있다는 생각이엇다. 그런데 바울은 바로 그 점을 가르쳐주었다. '하나님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모두 사랑하신다.' 홍수를 일으키고 메뚜기떼를 보내며 벌주는 하나님이 이제 모두와 대화하고, 대사제와 왕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각 개인이 가진 사소한 걱정에도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모두를 위한 종교'라는 구상은 혁명적이면서 초기 민주주의적이었다. 그 결과는 엄청났다. 누구에게나 열린 하나님과의 개인적 관계를 강조함으로써 바울은 인간의 보편적 존엄성이라는 이념을 세상에 내놓았다.
 
  바울은 모든 인간 안에 신성한 불꽃이 들어 잇다고 가르쳤는데, 이 같은 메시지 속에는 또 다른 사회적, 정치적 뇌관이 숨어 있었다. 가령 하나님 앞에 모두가 평등하다는 이야기는 남녀가 동등하다는 사실을 내포하고 있었다. 주인과 노예의 관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바울은 하나님이 성령을 통해 우리 각자의 곁에 계신다고 설교해 대중들을 놀라게 했다. 게다가 사회 위계질서에서 맨 아래에 자리한 이들이야말로 하나님과 가장 가까이 있고, 이보다도 더 하나님과 가까운 것은 모두가 무시하는 가장 미천한 자들이라고 했다. 이 같은 메시지는 후기 고대 사회에 큰 충격을 던져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바울은 십자가에서의 죽음을 승리, 즉 인류의 모든 죄를 사하는 궁극의 제물로 재해석함으로써 고대의 세계질서를 전복하면서 영웅적인 것을 새롭게 정의했다. 이러한 역설을 통해 바울은 훗날 세속적 가치규범을 포함해 서양 세계의 정신적 핵심을 이루게 될 가치를 표현했다. 바로 약자를 존중하고, 어려운 이들을 돌보고, 개개인의 생명을 책임지는 자세다.
 
 
<역사를 바꾼 거대한 생각들>
  인간은 가장 숭고한 위업을 이룰 능력을 갖고 있다. 하지만 가장 비열한 짓을 벌일 수 있는 것 또한 인간이다. 인간에게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는 까닭에 스스로를 억제해 할 수 있는 일을 모두 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가장 품위있는 형태의 자유가 된다.
 
  호메로스에 따르면 배신, 도둑직, 부정 같이 오로지 나만의 이익만을 위하고 자기 억제를 모르는 것들이야말로 추함 그 자체다. 인간에게는 선과 악, 미와 추 사이에서 선택할 자유가 있다.
 
  ......인류 역사에서 최초의 지도자는 주술사였을 것이라고 짐작된다. 분명 영적 능력이 탁월하고 카리스마가 남다는 자들이 무리에서 확고한 지위를 차지했을 것이다. 혹은 유능한 허풍쟁이, 헛소리꾼들이 권력을 잡았다고 해도 좋다. 어차피 이 두 유형은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은 역사의 대부분을 부자유한 상태로 지냈다. 부자유는 이 세상에서 가장 정상적인 상태였던 것이다. 예컨대 사람이 다른 사람의 소유물이 된다는 사실에 대해 수천 년간 누구도 비판적인 질문을 던지지 않았다. 얄궃게도 자유주의적인 북미 대륙에서조차도 18세기까지 똑같은 현상이 나타났다. 인간이 자유로울 수 있다는 이념은 인류사 대부분의 기간 동안에 얼토당토않은 것으로 여겨졌다. 고대 오리엔트 언어에는 자유에 해당하는 말조차 없었다.
 
  인류사적으로 볼 때 <출애굽기>는 다신교에서 일신교로 전환하는 계기가 되었다. 모세5경에 포함된 <출애굽기>에서는 동맹의 선포가 핵심 주제를 이룬다. 동맹은 신의가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리고 신의는 자유를 전제로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신의의 가치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구약에서 '믿음'은 신의 또는 신뢰와 동일한 단어로 표기된다. 믿음이란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자손을 노예 상태에서 해방시키기 위해 이들과 동맹을 맺는 것을 뜻한다. ...... 하나님은 다신교의 신처럼 비개성적이로 제멋대로이고 예측 불가능하지 ㅇ낳고, 한 무리의 사람들이 떠돌 때 동행하는 구체적인 대화상대자가된다. 이처럼 신의에 기반한 일신교를 통해 세계는 탈마법으로 가는 첫 걸음을 내딛는다. ......유대인들의 이집트 탈출 이야기는 더 이상 세계를 혼란스럽고 강자가 힘을 휘두르는 장소로 설명하지 않는다. 오히려 도덕적으로, 윤리적 법칙에 따라 역사를 새로 해석한다.
 
  반면 <출애굽기> 신화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출애굽기>가 말하는 세계에서 하나님은 특정한 민족을 노예의 사슬에서 풀어주고, 그들과 정의로운 사회를 실현하는 공동의 프로젝트를 추구한다. 이제 하나의 프로젝트가된 역사는 돌연 방향과 목표를 갖게 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인간에게 중요한 역할이 주어진다. 
  더 이상 숨지 않고 자신의 뜻을 인간에게 선포하고 계시하는 신이 <출애굽기>와 <출애굽기>에 기반한 일신교적 세계 종교를 통해 뚜렷이 모습을 드러냈다.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를 계시종교라 부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윤리를 내포한 계시종교는 인류가 만든 모든 이데올로기와 이데올로기즘의 선조다. 가령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등을 빼놓고는 마르크시즘 같은 프로젝트를 이해할 수 없다. 정의로운 세상을 세우려는 인간의 등장과 함께 인류사를 통틀어 가장 의미심장한 일대 정신사적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모세와 아브라함에게 계시된 JHWH(야훼Yahweh)는 처음에는 유대인들만의 하나님이었다. 하지만 소수의 사람과 맺는 동맹에서 모든 인류에 대한 동맹으로 가는 길은 그리 멀지 않았다. 그다음 발걸음인 세계 선교 역시 당연한 논리적 결과였다. 
 
  완전한 사회가 가능하다고 믿는 이슬람교에서는 종교와 국가의 일치를 주장할 수밖에 없다. 반면 이 세상이 완전해질 수 없다고 믿는 서구에서는 자연스럽게 교회와 국가가 상반된 길을 가게 되었다. 난감한 상황에 대처하고 다양한 견해들을 조율하기 위해 민주주의가 유일한 해결책으로 제시된 것도 같은 맥락에서였다. 플라통 이후로 분명해졌듯이, 우리는 민주주의가 만병통치약이 아님을 잘 아고 있다. 하지만 적어도 처칠이 보여준 통찰 이후로 우리는 민주주의가 모든 보잘 것 없는 정부 형태 가운데에서 그나마 가장 낫다는 것을 깨달았다. 민주주의는 최후의 진실이란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으며 내가 남보다 잘 모를 수도 있다는 깨달음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따라서 민주주의 개념이 무수히 오용되고 민주주의적이라고 불리는 많은 것들이 초라한 모습을 띠고 있을 지라고 민주주의는 어쩌면 자유 다음으로 가장 아름다운, 또 가장 겸허한 인류의 이념일지도 모른다. 
 
 
 
<예술로 보는 인간의 시대>
  인간이 특별한 존재임을 확인하고 싶은가? 그래서 인간 중심적 세계관이 정당하고 인간의 시각에서 세계사를 서술하는 일이 타당하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은가? 영혼을 가졌기에 인간은 어딘가 특별한 존재이고, 또 마땅히 삼라만상의 중심에 서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우리가 창조한 예술에 눈을 돌릴 필요가 있다.
  모든 예술 중에서도 가장 초감각적 성격을 띤 것은 음악이다.
 
  르네상스가 가져다준 혁신은 예술가들이 무명의 수공업자에서 벗어나 스타 화가가 되었다는 데에 있다. 
 
  르네상스의 거장들은 자기선전의 전문가들이기도 했다. '모든 게 새로웠다!' '백지 상태!' '새로운 출발!' 등의 선명한 광고 문구를 사랑하는 우리로서는 이런 말에 현혹되기 쉽다. 라파엘로는 그의 이름 아래 일하는 예술가들로 가득한 작업장을 감독했을 뿐 아니라 그의 명성을 세상에 퍼뜨리는 일을 담당한 일군의 홍보직원을 고용하기도 했다. 그것이 바티칸에 있는 교황의 방이든, 은행가 키지Chigi가 소유한 빌라 파르네시나의 개인 공간이든, 작품을 주문받은 라파엘로를 은둔한 채 자신의 작업에만 몰두하는 고독한 예술가로 상상해서는 안 딘다. 오히려 당시 예술품이 만들어지는 모든 과정은 지금의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제작에서 불 수 있는 역동성을 띄고 있었다. 라파엘로도 스티븐 스필버그처럼 제작자, 감독, 단장으로서 1인 3역을 하며 큰 무리의 예술가들을 통솔했다. 이는 중요한 전환기인 르네상스의 특징을 여실히 보여주는 현상으로, 이 무렵 예술가의 지위는 수공업자에서 슈퍼스타로 껑충 높아지기도 했다.
 
교회가 정해준 주제와 형식에서 벗어나 자신의 아이디어를 실현하는 존재로 스스로를 여기는 순간 예술가들은 단순한 수공업자에서 벗어나 천재감독으로 변신한다. ......현대예술은 예술적 자유를 마음껏 누리는 것에서 출발한다. 1290년경 지오토가 그랬듯이 말이다.
  지오토와 함께 비로소 예술적 자유를 향한 문이 활짝 열렸다. 이후 예술가들은 자신이 현실로 지각한 것을 그리기 시작했다. 다음 단계에서 그림은 '회화적'이 되었다. 즉 일부러 붓터치를 감추지 않았다.
 
  ......그리고 어느 순간 지각을 대상으로 실험을 벌이기 시작했다. 19세기 인상파 화가들은 눈에 보이는 자체를 화폭에 담았는데, 이런 이유로 처음에는 놀림을 받기도 했다. 표현주의자들은 보는 것이 아니라 느낀 것을 그렸다. 그 누구보다 불행했던 에드바르트 뭉크는 1910년 '절규'라는 제목을 단 연작 가운데 마지막 작품을 완성하면서 자신의 가장 기푹한 내면을 밖으로 드러냈다. 피카소와 브라크는 여러 시점에서 동시에 바라본 대상을 그렸고 일상의 재료를 그림에 포함시켰다. 산업화 시대에 가능한 유일한 논리적 귀결인 셈이다. 말레비치는 1915년 <검은 사각형>을, 몬드리안은 몇 년 뒤에 기하학적 무늬들을 소개했다. 이로써 미래파 화가와 다다이스트들이 단언한 자연스러운 종착지에 이르게 되었다. 이제 남은 일은 대량생산된 상품들을 예술로 선언하는 것뿐이었다. 마르셀 뒤샹의 소변기가 미술관에 전시되었을 때 그것은 더할 나위 없이 급진적인 행위였다. 이제부터 등장하는 것들은 기본적을 반복에 불과했다.
 
  지적 약품설명서라 할 수 있는 이론을 예술로 만든 보이스, 전후 등장한 추상표현주의자들, 워홀의 일상문화 예찬, 키스 해링과 장 미셸 바스키아의 그래피티 예술, 안젤름 피커의 묵시론적 비전, 비디오 설치, 해프닝, 진짜 부랑자, 배설물까지 이 모든 것이 예술사의 종말에 대한 강력하고도 최종적인 논평에 해당했다.
  마치 어느 순간 더 이상 할 말이 없어져 버린 것만 같았다.
 
<아담에서 애플까지 역사를 바꾼 발명>
  발명에 대한 글을 쓴다는 것은 말 그대로 똥 같은 일이다.
 
  정확히 언제 그러한 일이 벌어졌는지는 분명치 않다. 다만 30만 년 전쯔메 이미 도처에서 일상생활에 불이 사용되었다는 사실은 분명해 보인다.
 
  불을 길들이고 나자 짐승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는 용도를 넘어 짐승을 사냥하는 데 쓸 무기들이 만들어졌다. 칼은 물론이고 저멈 더 정교해진 새 도구들이 선을 보였다. 약 3만 년 전부터는 혁신이 출현하는 간격이 더욱더 짧아졌다. 화살과 활, 고성능 무기 등이 발명되었고 그로부터 2,000년 후에는 램프, 냄비, 어망 등이 등장했다.
  기원전 1만 년경, 농업혁명이 시작되면서 혁신적인 발명품의 수도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이때부터 걷잡을 수 없이 빠르게 혁신이 이루어졌다. 기원전 4500년경에는 쟁기, 기원전 4000년경에는 수레바퀴, 기원전 3500년경에는 멍에 등이 불과 몇 세기 간격을 두고 차례로 등장했다. 획기적인 기술 혁신이 벌어지는 간격은 갈수록 단축되었다.
 
  심지어 이와 같은 시대를 가리키는 전문용어인 인류세Anthropocene, 즉 인간의 시대라는 신조어까지 생긱 정도였다. 현 시대를 가리키는 용어로는 홀로세Holocene가 사용되어 왔는데, 홀로세는 기후가 온화해지면서 인류가 지구에서 편안히 지낼 수 있게 된 1만 2,000년 전에 시작되었다. 그런데 이제 우리는 홀로세가 아닌, 인간이 직접 자연을 통제하는 새로운 시대에 살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생물학에만 국한된 일이 아니다. 지구공학Geoengineering의 예에서 보듯이, 인류는 가열된 대기권을 식히기 위해 지구 기후시스템을 조절하는 모델을 만드는 단계까지 왔다.
  이 모두는 대단한 업적처럼 들린다. 이에 환호하는 이들도 있다. 그렇지만 인가의 자연지배에 대해 너무 우쭐대서는 안 된다. 심림 파괴, 지구 온난화, 종의 파괴 등 우리가 지구에 남긴 흔적들은 "우리 지배력의 부산물"이다. 이 표현은 베를린에 사는 역구 철학자이자 인류세 논쟁(<인류세The age of Anthropocene: Masters of the Earth>, <<Financial Times>>, 2014년 12월 13일)에도 참여한 바 있는 스티븐 케이브가 사용한 것이다. 그는 또 "인류세는 우리의 우월함과 함께 우리의 실패를 보여주는 증거다"라는 말도 남겼다.
  케이브는 이와 관련한 가장 흥미로운 질문, 우리를 지금처럼 발전하게 한 독창성은 어디서 비롯되었는가라는 물음엗 대답을 내놓고 있다. 그는 자신의 저서 <<불멸Immortality>>에서 그것은 기본적으로 죽음을 정복하려는 인간의 영원한 욕구에 관한 문제라고 설명한다. 그 욕구가 인류 문명을 이끈 힘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야기가 끝나갈 무렵 왕은 불로초를 뱀한테 도둑맞는다. 고향인 우룩Uruk 땅으로 돌아온 왕은 한 술집에서 주모의 꾸지람과 함께 지금의 삶을 즐기고 비탄에 빠지는 대신 죽음을 받아들이라는 충고를 듣는다. 긱가메시가 처음부터 주모에게 갔더라면 일찍 깨달음을 얻었을 테고 온갖 모험을 겪을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도스토옙스키도 같은 주제를 다룬 적이 있다. 그를 사로잡은 질문은 다음과 같았다. "어째서 인간은 그토록 자연을 지배하고 싶어 하는가?" 이 질문은 소설 <<카라마조프 형제들>>에 등장하는 대심문관의 독백에서 제기된다. ......대심문관은 고통이 지배하는 세계를 창조한 것에 대해 하나님의 책임을 탓한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지상의 낙원을 선물하기를 거부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이 직접 팔을 걷어 부치고 문제 해결에 나설 수밖에 없지 않은가?
 
  메리 셸리Mary Shelley, 1818년, <<프랑켄슈타인, 오늘날의 프로메테우스>>
  프리드리히 뒤렌마트, 1962년 희곡  <<물리학자들>> 뫼비우스 교수
 
 
<역사 속의 악당들과 보통 사람들>
  어째서 사람들은 히틀러 앞에서 공포를 느끼면서도 그에게 매혹될까? 이유는 간단하다. 히틀러가 절대적인 악으로 취급당하고 잔인하고 원초적인 것의 화신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너무도 섬뜩한 존재로 여겨지는 탓에 어쩌면 그와 닮았을지 모를 피와 살을 가진 친척들이 생존해 있다는 상상조차 불편할 정도다. 유튜브에서는 히틀러의 육성 녹읆을 들을 수 있다. 거기에는 정당대회에서 한 연설뿐 아니라 차분한 톤의 목소리도 올라와 있다. 영락없는 괴물이나 정신병자가 내는 소리를 기대한 곳에서 평범한 목소리가 들린다는 사실은 섬뜩하기 조차 하다. 
 
  ......하지만 놀라운 점은 히틀러를 경멸케 한 바로 그 특징들로 인해 나폴레옹이 추앙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나폴레옹 숭배전에서 거듭 등장하는 주제 가운데 하나로 '불굴의 의지'를 꼽을 수 잇다. 마찬가지로 불가능한 것을 가능케 하는 나폴레옹의 능력도 칭송을 받는다. 그런데 이것들이야말로 린츠의 세관원 아들내미가 가졌던 트깅들이다. 히틀러처럼 나폴레옹도 스스로를 운명에 의해 선택된 사람으로 여겼다. 나폴레옹은 늘 자신만을 생각했고 역사 속에서의 역할에 사로잡힌 극단적인 자기중심적 인물이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강박적 성향과 전능의 환상도 히틀러와 나폴레옹을 이어주는 요소다. 게다가 이 둘은 순전히 자존심에서 수천 명의 젊은 생명을 한꺼번에 희생하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나폴레옹은 근대 독재자의 원형이다. 근대 최초의 군사 쿠데타로 권좌에 올라, 선전과 자기연출을 체계적으로 활용한 최초의 인물이기도 했다. 또 최초로 사법기관, 경찰, 교회를 독재체제를 떠받치는 수단으로 이용했다. 나아가 자국 국민들에게 총격을 가하게 한 근대 최초의 국가 원수이기도 하다. 나폴레옹이 국민들에게 공공연히 경멸을 표한 점은 히틀러를 떠올리게 한다.
 
  ......요아힘 페스트,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 골로 만Golo Mann 등이 그랬던 것 처럼 히틀러라는 인물을 세계사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실수로 볼 경우, 그 주장은 아무리 그럴싸하게 들리더라도 ㄱㄹ국에는 엄청난 자기기만이다. 그리고 이러한 착각은 개인이나 사회가 인간과 생명을 경시하는 잘못을 절대로 범하지 않을 것이라는 그릇된 확신으로 이어진다.
  악을 멀리 밀어내고 싶은 욕구는 아주 당연하면서도 인간적이다. 희생양에서 보듯이 우리 조상들은 대리인을 희생시키는 의식이나 마녀 사냥을 통해 그 같은 욕구를 만족시켰다. 일체의 악을 거부하는 그러한 방법이 현대에 와서는 악을 상대로 '병적'이라는 딱지를 붙이려는 경향으로 나타나고 잇다. 충격적인 범죄가 발생하는 즉시 우리는 범인을 보고 '미쳤다'고 한다. 그럼 일단은 그 범죄자를 우리로부터 멀찌감치 떨어진 안전한 거리에 두게 된다. 하지만 이때 우리의 자기확신 기제가 일부러 도외시하는 사실이 있다. 감옥은 여러분과 나와 똑같은 인간들로 가득 차 있고 살인이라는 극단적인 범죄는 대부분 정신적으로 건강한 이들에 의해, 대개는 격한 감정 상태에서 저질러진다는 사실이다.
 
  독일의 작센하우젠 집단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안드르예슈치피오르스키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내가 집단수용소에서 알게 된 사람들로 말하자면, 이들은 부지런히 자신을 희생하면서 타인을 죽이고, 사욕 없이 책임감을 갖고 꼼꼼히 주위 사람들을 밀고하고, 이들을 성실하고 부지런히 고문하고, 그 와중에 모범적인 청결함과 세심함을 보여주었다." 히틀러, 나폴레옹, 얀 판 레이덴(재세례파 지도자이자 혁명주의자), 이디 아민 폴 포트 같은 이들은 비정상적인 인물들이 아니다. 이들은 예외적인 존재가 아니다. 오히려 모두가 동의한 일에 맞서는 힘겨운 선택을 해서라도 인간의 존엄을 지키고자 했던 이들이야말로 예외적인 존재였다.
 
 
<인류 역사를 바꾼 말들>
  ...문화철학자 토마스 마호Tomas Macho는 다음과 같은 흥미로운 가설을 내놓았다. 즉 수천 년에 걸쳐 확산되어온 인류의 정착생활은 기원전 1만 2000년경부터 부재하는 것을 명명하는 우리의 능력에 유리하게 작용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인류의 언어 능력과 상상력도 비약적으로 발전했던 것으로 보인다. 마호에 따르면 인류가 유목 생활을 접는 시점에, 즉 더 이상 언덕에서 강으로, 강에서 황야로, 황야에서 초원으로 이동할 필요가 없어지면서 수평적 이동이 수직적 이동으로 대체된다. 다시 말해 인간은 이제부터 비유적 의미의 이동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자신이 어디서 왔는지, 가령 조상이나 망자의 세계, 또는 아직 태어나지 않은 이들의 세계에서 온 것은 아닌지 스스로에게 묻는다. 
 
  바이에른에서 활동하는 진화생물학자인 요제프 라이히홀프는 <<왜 인간은 정착 생활을 시작했을까?>>에서 발효의 발견이 정착이라는 성공모델에 결정적 요인이 되었다고 주장한다. 가령 초기 형태의 맥주를 양조하는식으로 발효 기술을 체계적으로 이용하기 위해서는 여기저기 옮겨 다니지 않고 한 곳에 자리를 잡을 수밖에 없었다. 음주 습관은 분명 정착을 결심하고도록 한 훌륭한 근거가 되었을 것이다.
 
루터는 에고ego 문화의 프로메테우스였을 뿐 아니라, 무엇보다도 세속적인 요소를 새롭게 종교에 추가했다. 누구나, 언제든지, 어떤 직위에서든, 또 모든 직업에서 신의 뜻에 맞게 살 수 있다고 주장한 푸터는 일상을, 그중에서도 독일어권, 네덜란드 및 영어권 지역에서는 특히 노동을 신성한 것으로 만들었다. 루터가 세상에 내놓은 말과 사상은 세상을 뒤바꿔놓았다. 말이 가진 막강한 영향력을 보여주는 사례로 이보다 더 좋은 경우가 또 어디에 있을까.
 
  ...워싱턴 링컨 기념관 앞에 서서 생애 가장 위대한 연설을 했을 때 마틴 루터 킹의 나이는 34세였다. 
  수사학적 기법들만 늘어놓아서는 이 연설의 탁월한 면을 파악하기 힘들다. ...... 그의 연설에서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킹 목사가 간접 인용과 언어유희를 통해 링컨의 유명한 게티즈버그 연설을, 그리고 이를 통해 시민권의 보편성을 거듭 암시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킹 목사는 영리하게도 스스로를 반항아가 아닌 애국자로 자리매김했다. 그는 자신의 열렬한 지지자들뿐 아니라 전 국민을 상대로 이야기했다. 어쩌면 그의 가장 탁월한 전략은 청중, 즉 미국 국민 전체에게 역사적 순간을 함께한다는 기분을 전달함으로써 역사적 의미를 갖는 결단을 내리고 직접 역사를 쓸수 잇는 가능성을 열어줬다는 데에 있을지도 모른다. 그에게 주어진 시간은 불과 8분이었다.
 
<모든 역사에는 끝이 있다>
  어는 정도 진지한 역사책이라면 '모든 일이 완전히 다르게 전대되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라는 문장이 반드시 책 말미에 적혀 있어야 한다.
 
  역사를 둘러싼 중대한 오해 가운데 하나는 모든 일들이 지금 벌어진 대로 진행될 수밖에 없었다는 생각이다.
 
  역사에서 우리를 아연케 하는 점은 대부분 전혀 기대치 못한 일들이 벌어지곤 한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없었던 거대한 혁명이 우리를 향해 서서히 다가오고 있다. 바로 이 순간 초유의 세계사적 변화를 겪고 있으면서도 우리는 그 사실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100년 뒤에 이렇게 말할 것이다. "새천년이 시작될 무렵부터 이런 징조가 나타났다." 하지만 '그것'의 징조가 나타날 때 우리는 노천 호프집에서 10월의 햇살을 즐기며 이메일을 확인하고 있었다.
  
  ......500년 전만 해도 가족 없이 독신으로 사는 사람드은 정신 이상자나 수도사 정도였다. 100년 전만 해도 독신자들은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 반거나 의심의 눈초리를 받았다. 현재 대도시 싱글족들은 전체 인구의 3분의 1 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오늘날에는 적어도 중부 유럽에서는 국가가 국민들에게 보편적 의료서비스와 예전에 가족이란 울타리 속에서 누렸던 안전망을 제공한다.
 
  미래에 어떤 위험이 닥칠지 미리 짐작하려면 우리가 가장 안전하다고 느끼는 부분부터 살펴보는 게 좋을 것이다.
 
  ...우리 DNA에는 주변과 갈등을 빚고 끊임없이 혼란에 빠지는 경향이 들어 있다. 사람들은 자유주의와 다원주의를 곧잘 혼동한다. 다원주의에는 엄밀한 의미에서의 자유주의와 구별되는 결정적인 차이점이 한 가지 있다. 다원주의에는 도덕이나 정치와 관련해 절대적인 정답이 있는 판단이란 없다는 통찰이 담겨있다. 서로 다른 정답들이 무수히 존재한다는 것이다. 다원주의적 사회에서는 서로 견해가 일치하지 않을 때가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이는 자유주의적 합의에 반대하는 상대방의 의견도 받아들여야 하는 의무가 있음을 의미한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미국 건국 신화와 관련해 이런 우스갯소리가 있다. '장로교 신자들은 왜 영국에서 미국으로 도망쳐 왔을까? 바로 각자의 신앙에 ㄸ라 자유롭게 살고, 또 그런 자신들과 똑같이 살도록 남들에게 강요하기 위해서다'
 
  자유주의적·쾌락적 인생관을 공유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 사람을 바보나 아웃사이더로 부른다면, 이야말로 지극히 반자유주의적인 태도다. ......자유를 옹호하려면 자신을 가장 짜증나게 하는 사람들의 자율르 지키는 데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자유주의가 자신을 선전하는 유일한 방법은 자유주의적인 삶의 방식이 얼마나 매력적인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자유주의가 여타 이데올로기처럼 타인의 결해를 강제로 변화시켜 자신의 우월함을 과시하기 시작하거나, 나만이 옳다고 주장하며 반대자들을 동화시키려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자유주의라 할 수 없다.
 
   ......어쩌면 선과 악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야말로 인간다움을 결정짓는 기준이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인류의 진보는 이러한 인간 고유의 자기애가 낳은 결과이자 동시에 종말을 암시하는 징후이기도 하다. 이를 알려면 아우구스티누스처럼 신앙심이 깊을 필요는 없다. 인간이 지구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닫는 글을 대신해>
  이 책 한 권을 읽었다고 역사를 꿰뚫어볼 정도로 현명해지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배움이란 우리가 모르는 것이 분명해지는 과정이기도 하다. 세상 이치가 그렇다. 문을 열어젖히는 순간 그 뒤로는 다시 세 개의 문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신문을 모조리 다 읽거나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옆으로 밀쳐놓으면서 사람들이 빠짐없이 정보를 챙기고 있다는 기분에 빠지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그렇게 얻은 지식들이 깊숙한 곳을 긁어주지 못한다는 예감을 떨치기가 힘들기도 하다. ....... 오늘날 누군가에게 '최신 정보에 해박하군'이라고 말하는 것은 마치 바다에서 나온 사람에게 '저런, 물에 젖었군!'이라고 말하는 것과 비슷한 일이다.
  괴테를 제외하고 이런 사정을 가장 잘 표현한 이는 미국 국방장관을 역임한 도널드 럼스펠드Donald Rumsfeld다. 그는 3차 걸프전쟁의 발발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 잘 알려진 확실한 일들이 존재합니다. 즉 우리가 그것을 알고 있다는 것을 아는 일들이 있습니다. 또 우리는 잘 알려진 불확실한 일들이 존재한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즉 우리는 우리가 모르는 어떤 일들이 있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알려지지 않은 불확실한 일도 있습니다. 즉 우리가 그것을 모른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하는 일이 있다는 것입니다." 원문은 훨씩 시적으로 들린다. "There are known knowns; there are things we know we know. We also know there are know unknowns; that is to say we know there are some things we do not know. But there are also unknown unknowns - there are things we do not know we don't know. (프렌즈의 조이와 레이첼(?-피비였나??)의 대화가 생각나는 문장이구먼!ㅋㅋㅋ
 
  ......지식중독이야말로 인간의 원초적 욕망이자 동시에 모든 불행의 근원이다. 인간은 자신이 가진 것과 알고 있는 것에 결초 만족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신이 아는 것에 부족한 부분이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취할 수 있는 가장 현명한 행동이다. 이를 위해 때로는 용기도 필요하다.
 
  우리는 기존에 알고 있던 것들에 의문을 가지도록 자신을 훈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