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서

요네하라 마리 [속담 인류학], 마음산책

쭹- 2023. 6. 13. 12:05

  십 년 전 쯤에 프라하의 소녀시대를 읽고 우아! 하고 빠져들었던 요네하라 마리 책이 도서관에서 보이길래 빌려보았다.

  날카로운 시선과 정곡을 찌르는 재치 있는 입담으로 월간지 혹은 주간지에 기고했던 속담을 매개체로 일본의 정치 상황과 지도자 등을 비판하는 사설(?) 에세이(?)를 묶어 놓은 책이었다. 어마어마하게 방대한 전 세계의 속담을 수집하고 비슷한 맥락이나 의미를 가진 것들을 분류하여 그것을 토대로 주제(속담)를 정해 재미나고 살짝 저속(?)한 농담류의 이야기로 글을 시작한다. 그 이야기 내용과 연관된 전 세계적 속담 또는 전혀 반대되는 속담을 매우 많이 소개(혹은 나열... 그만큼까지 하지 않아도 될 듯하지만, 그녀의 파고드는 기질과 그만큼 관련된 속담이 많다라는 의미로만 받아들이면 될 듯)한 후 관련한 자신의 에피소드나 생각을 언급하며 주제를 이어나가다가 당시 미국 부시 대통령과 이라크 전쟁, 일본의 고이즈미 총리와 정치인들을 연관지어 비꼬고 조롱하고(충분히 그럴만한 것들)... 
  내용 중 북한에 대한 작가의 시선이 우리와는 사뭇 다르지만, 아, 일본의 식견과 상식있는 자들도 이렇게 생각하는 구나.. 정도를 알 수 있게 해주는... 그 정도..?
  난소암으로 56세, 2006년 세상을 뜬 요네하라 마리의 그 입담과 글 솜씨가 너무 아쉽고 또 아쉬워지는 그런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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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미국의 금연 운동 열풍이 무시무시하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흡연자들이 이렇게 까지 내몰리고 있었나 하는 생각에 조금 안쓰러웠다. 담배를 즐기진 않지만 20년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가 골초였기 때문이리라.
  하루 평균 60개비 이상 담배를 피운 아버지는 늘 주치의한테서 주의를 받았다.
  "최소한 하루 20개비로 줄여도 되지 않을까요?"
  아직 세상이 건강 지상주의와 금연 일변도에 물들기 전이었으나 과도한 흡연이 건강에 좋지 않다는 건 상식이 돼가고 있었다. 한번은 여동생과 함께 아버지에게 캐물은 적이 있다.
  "저, 아버지. 왜 그토록 담배를 피우세요? 이젠 건강도 좀 생각하셔야죠."
  "그건 말이야, 아버지 머리가 너무 좋아 그런거야."
  아버지는 담배 연기를 맛 좋은 듯 마시며 이야기했다.
  "뇌세포 움직임이 너무 빨라서 주변에 맞추려면 브레이크를 걸어줘야해. 온종일 그냥 놔두면 지쳐버려. 한데 담배를 피우면 뇌세포 움직임이 완화돼 아주 좋아져. 그러니 담배를 끊을 까닭이 없는 거야."
  아버지는 다시없는 애주가이기도 했다. 그리고 음주를 정당화하는 핑계도 확실했다.
  "물소 같은 초식동물은 반드시 무리를 지어 생활하지. 사자나 늑대 같은 육식동물의 공격을 받게 되면 무리가 한 덩어리로 도망가. 무리로서의 일체감을 잃어버려선 안돼. 그래서 무리가 이동할 때는 가장 느린 물소의 속도에 맞추는 거야. 육식동물의 희생이 되는 건 보통 무리의 맨 끝에서 따라가는 허약하고 느린 물소야. 가장 느린 물소가 잡아먹히기 때문에 무리의 속도는 오히려 빨라지지.
  인간의 머리 회전도 같은 거야. 뇌수도 가장 멍청하고 유약한 뇌세포의 속도보다 빨리 회전할 수 없는 구조로 돼 있어. '알코올을 너무 섭취하면 뇌세포를 파괴한다. 그러니 음주는 적당히 해라'따위의 그럴듯한 논리를 늘어 놓는 자들이 있는데, 물소 무리와 마찬가지로 알코올 때문에 파괴되는 건 가장 약하고 느린 뇌세포야.
  말하자면, 그래서 매일 술을 마시면 느린 뇌세포를 파괴해주니까 결과적으로 뇌수 전체의 움직임은 빠르고 효과적으로 되는 거야."
  "아버지, 머리 회전이 너무 빠르면 힘들잖아."
  "그러니까 그걸 담배로 조절하는 거잖아."
  "......."
 
-----아버지의 입담이 이러할 지니 딸의 입담이 어딜 가겠나 싶은 구절이었다 ㅋㅋㅋㅋ
 
 
그리고 몽테스키외 [수상록] 언급한 구절
 
만약 사람이 그냥 행복만을 추구한다면 금방 그렇게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은 남들보다 더 행복해지려고 하기 십상이어서 대부분 그럴 수 없다. 우리는 남들이 실제 이상으로 행복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