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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너선 사프란 포어 [우리가 날씨다] 민음사 본문
19년도에 나온 We are the Weather...
읽고 싶어 눈 빠지게 번역본 출간을 기다리고 있다가 잊어버리고는 이제야 아 맞다 하게 되었네.
이제는 거의 기자나 다큐멘터리 작가라고 해야 될 것 같은 포어 오라버니의 덤덤하지만 언제 들어도 충격적인 지금 내(지구)가 처해 있는 상황 고발-내가 바로 날씨이고, 자연이고, 지구인 것-알고 있는 것을 삶의 매 순간 떠올려야하고, 믿어야하고, 행동해야한다고 내 귀에 크게 소리쳐주는 책.(실천해야 하는데 맨날 말 뿐인 나 같은 사람들을 말로 때려준다고나 할까...?)
1장 믿을 수 없는 : 뭔가를 해야만 하는 이유들
2장 어떻게 하면 대멸종을 막을 수 있을까 : 우리가 어떻게 지구를 변화시켜 왔는지에 대한 팩트 체크와 식사와의 관계
3장 유일한 집 : 왜 집을 구해야만 하는가 지구를 집에 비유하여 설명
4장 영혼과의 논쟁 : 알면서 행동하지 않는 자(작가자신=나와같은 독자)와 뭘 해야 하는지 알고 있는 영혼과의 대화(이 장에서 정말 맴매 백만 번 맞음)
5장 더 많은 삶 : 읽는이에게,,, 또 ,아들에게 쓰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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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믿을 수 없는
런던에서 전(戰)시에 그러했듯이 폭격기가 머리 위에 있다면 말할 필요도 없이 전부 전등을 끌 것이다. 반면 포격이 먼 바다에서 일어나고 있다면, 마찬가지로 위험하다해도 전등을 끄는 행동이 당연하다고 할 수 는 없다. 바다 건너에서 포격을 당하고 있다면 포격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알아도 믿기 힘들지 모른다. 마치 우리 행성의 파괴가 남의 일이라는 듯 굴면서 '환경'위기를 피부로 느낄 때까지 손을 놓고 있다면, 모두가 매달려도 더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날이 오고야 말 것이다.
돌이켜 보면 역사는 좋은 이야기를 만든다. 더불어 좋은 이야기들이 역사가 된다. 우리 행성의 운명은 또한 우리종의 운명이며, 이는 심오한 문제이다. 해양 생물학자이자 영화감독인 랜디 올슨이 말했듯이, "기후는 과학계가 일반 대중에게 제시해야 했던 문제 중에서 가장 지루할 확률이 아주 높다." 위기에 서사를 부여하려는 시도는 대개 과학 소설이거나, 과학 소설로 치부된다. 유치원생들도 재창조할 수 있는 '기후변화 이야기' 버전은 없다. 아이들과 부모들이 감동해서 눈물 흘리게 할 버전도 없다. 무슨 짓을 해도 저기 멀리서 일어난 일로만 생각할 파국을 바로 여기, 우리 가슴 속으로 끌어올 수 는 없을 것 같다. 작가 아미타브 고시가 [위대한 혼란]에서 말했듯이, "기후 위기는 또한 문화의 위기이며, 그래서 상상력의 위기이다." 나는 이것을 믿음의 위기라 부르겠다.
우리의 마음과 가슴은 어떤 일을 하는 데에는 딱 맞게 만들어져 있지만 다른 어떤 일에는 영 맞지 않는다. 우리는 허리케인의 경로를 계산하는 일은 잘하지만 태풍을 피하기로 결정하는 일은 잘하지 못한다. 우리는 현대 세계와는 비슷한 점이 거의 없는 환경에서 수천만 년에 걸쳐 진화해 왔기 때문에 오늘날과 잘 맞지 않거나 현실에 대응하지 못하는 열망, 공포, 무관심에 이끌리곤 한다. 우리는 당장, 바로 그 자리에서 필요한 무언가에 더 끌린다. 지방과 설탕을 좋아한다.(이런 것을 언제 어디서나 쉽게 얻을 수 있는 세계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나쁜 일이다.) 정글짐에서 노는 아이들을 신경을 곤두세우고 지켜본다.(정작 아이들 건강을 더 크게 위협하는 요인은 무시하면서.) 그러면서도 치명적이지만 저기 멀리 있는 것에는 여전히 무관심하다.
우리가 사실에 기반을 둔 진실을 받아드이면서도(우리가 지구를 파괴하고 있다는 점) 믿지는 못한다면, 인간이 초래한 기후변화의 존재를 부인하는 이들보다 나을 것이 없다. 프랭크퍼터가 홀로코스트가 자행되었음을 부인한 이들보다 나을 것이 없었듯이. 미래에 두 종류의 부인을 구분할 때, 무엇이 심각한 실수이고 무엇이 용서받지 못할 죄로 보일까?
...감독 클론드 란츠만은 카르스키의 미국 방문에 대한 다큐멘터리인 [카르스키 리포트]의 도입부에서 이렇게 말했다.
지식이란 무엇일까요? 말 그대로 들어본 적도 없는 공포에 대한 정보가 인간의 뇌에서 어떤 작용을 할까요, 인류 역사상 전례 없는 범죄와 관련된 것이라서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되어 있다면?(......) 런던으로 도피한 레몽 아롱은 동유럽에서 당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고 있었냐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알기는 했지만 믿지 않았습니다. 믿지 못했으니까 알지 못한 거나 마찬가지죠.
'비상사태(emergency)'라는 단어는 라틴어의 에메르게래(emergere)에서 나온 것으로, 이는 원래 '일어나다, 불을 켜타'라는 의미이다.
'대재앙(apocalypse)'라는 말은 그리스어 아포칼립테인(apokalyptein)에서 나온 것으로, 이는 원래 '드러나다, 밝히다'라는 뜻이다.
'위기(crisis)'라는 말은 그리스어 크리시스(krisis)에서 나온 것으로, 이는 원래 '결정'이라는 뜻이다.
재난이라는 말은 전에는 감추어져 있던 것을 드러낸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전 지구적 위기가 연이은 비상사태로 터져 나올 때, 우리가 내리는 결정은 우리가 누구인가를 드러낼 것이다.
다른 문제들은 서로 다른 반응을 불러일으키고 요구한다. 차 아래 깔린 사람이라면 공포는 적절한 반응이지만, 사소한 누수 때문에 근사한 집을 판다면 걱정이 지나친 것이다. 지구의 상황은 무엇을 요구하며, 무엇을 불러일으키는가? 그리고 이런 상황이 요구하는 대로 따르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결국 우리가 교통체증을 피하려고 차 위에 섬광등을 달면서도 정작 전쟁이 일어나 폭탄을 맞을 위험이 있는데도 전등을 끄지 않을 사람이라면?
분명 사실만으로는 우리를 움직일 수 없다. 하지만 감정을 계속 유지할 수 없다면? 나는 전 지구적 위기에 대한 나 자신의 반응과 싸웠다. 나는 분명히 지구의 운명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내가 투자한 시간과 에너지가 관심의 정도를 나타낸다면 어린 시절의 고향인 워싱턴을 연고지로 둔 야구팀 워싱턴 내셔널스의 성적에 더 마음을 쓰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나는 결단코 기후변화 부인론자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내 행동이 그글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프로야구 개막전을 보기 위해 아이들이 학교를 빼먹는 것을 눈감아 주겠지만, 미래에 우리의 고향이 물에 잠길 사태를 막기 위해서는 사실상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다.
기후변화는 커피 탁자에 놓인 조각 퍼즐이 아니다. 조각 퍼즐이야 시간이 허락되고 그럴 마음만 있다면 다시 맞출 수 있다. 기후변화는 말하자면 불이 난 집이다. 오래 내버려 둘수록 수습하기는 더 힘들어진다. 녹아내린 빙하가 시커먼 물이 되어 더 많은 열을 흡수한다든가 영구동토층이 녹아 최악의 온실가스 중 하나인 엄청난 양의 메탄을 방출하는 등의 되먹임 회로 때문에 순식간에 '통제 불가능한 기후변화'의 티핑 포인트(작은 변화들이 어느 정도 기간을 두고 쌓여, 이제 작은 변화가 하나만 더 일어나도 갑자기 큰 영향을 초래할 수 있는 상태가 된 단계-옮긴이)에 이를 테고, 그때는 어떤 노력을 기울여도 우리 자신을 구할 수 없을 것이다.
기후변화는 인류에게 닥친 가장 큰 위기이다. 우리가 개인으로 맞는 위기이다. 여태 해 오던 식사를 할 수 없고, 여태 알던 행성에서 살 수도 없다. 식습관을 포기하거나 아니면 지구를 포기해야 한다. 그만큼 단순하고도 어렵다.
결정을 내릴 때 당신은 어디에 있었는가?
3. 유일한 집
인류가 기후 변화를 초래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사람들조차도 우리가 개인적으로 한 몫 했다는 점은 부인한다. 우리는 환경 위기가 커다란 외부의 힘에 의해 초대되며, 그렇기에 아주 큰 외부 힘에 의해 해결될 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우리가 책임져야 한다는 점을 인식하는 것이야말로 해결책을 도출하는 출발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집은 가장 친숙하고 덜 위협적인 곳이다. 그래서 가장 정확히 인식하기 어려운 곳이다.
어떤 모순일까? 우리 행성이 거친 우주로부터 우리를 보호해 주고 있지만 우리는 지구를 거친 우리들로부터 보호해 주지 않는다는 것. 우리가 지구에 살고 있음을 모두 알고 있지만, 지구를 떠나 봐야 비로소 이 사실을 믿게 된다는 것.
"아주 돈이 많이 드는 지구 온난화라는 개소리를 이제 집어치워야 한다. 우리 행성은 기록적으로 낮은 온도로 얼어붙는 중이고, 우리의 기후온난화 과학자들은 얼음 속에 갇혀 있다."
이런 말에 여러분은 어떤 반응을 보이고 있나? 분노? 공포? 반감? 이런 말에 접하면 나는 얼굴이 시뻘게지면서 누가 내 자식들을 위험에 처하게 할 때나 느껴 보았던 원시적인 분노를 느낀다.
하지만 그런 반응은 번지수가 틀렸다.
트럼프의 말보다 훨씬 더 치명적으로 과학을 부정하는 말이 있다. 바로 수용하는 것처럼 말하는 것이다.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면서도 행동에 나서지 않는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 더 분개해야 마땅하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두려워해야한다. 우리가 저항해햐 할 상대는 바로 우리이다. 내가 내 자식들을 위험에 빠뜨리고 있는 장본인이다.
"자기 모습을 알아본다고 꼭 자신에 대해 알게 되는 것은 아니다." 거울 실험을 비판하는 이들이 하는 말이다.
많은 경제학자들은 밀레니얼 세대가 재정적으로 부모보다 사정이 나빠지는 첫 세대라고 주장한다.
증조부모님은 실내 배관 시설이 없는 목조주택에서 살았고 추운 밤이면 난로 옆 부엌 바닥에서 주무셨다. 그분들은 내가 가진 것들을 믿을 수 없을 것이다. 필요하다기보다 그냥 편리해서 몰고 다니는 차, 전 세계 각지에서 수입한 음식들이 가득 채워진 식료품실, 매일 쓰지도 않는 방들이 있는 집. 내 증손주들도 이유는 다르겠지만 믿지 못할 것이다. 그렇게 잘 살았으면서 우리한테는 도저히 갚지 못할, 도저히 감당하지 못할 빚을 남겨 줄 수가 있었을까?
과식은 수백만의 생명을 위험으로 내몰지만, 동물성 제품 과식은 모든 인간의 생명을 위험에 처하게 만든다. 이를 이해하는데 고도의 지능이 필요한 일이 아니고, 답을 내놓는 데도 고도의 지능이 필요하지 않다. 우리들이 작은 희생을 통해 유대감을 보여 주지 않으면 전쟁에서 이기지 못할 것이다. 전쟁에서 이기지 못하면 모든 인간이 어린 시절부터 살아 온 집을 잃게 될 것이다.
기후변화를 진지하게 생각하건 안 하건, 떠나보내는 법을 배울 필요가 있다. 상실은 이미 시작되었다. 내일 탄소 배출을 영(0)으로 줄인다 해도 과거의 행동들이 초래할 죽음을 계속해서 목격하고 경험할 것이다. 행성은 우리는 물론이고 아이들에게도 더는 살기 좋고 아름답고 쾌적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산호초를 구할 수 없다. 아마존을 구할 수 없다. 해변 도시들도 구할 수 없을 것이다. 불가피한 상실의 규모는 아무리 발버둥 쳐 봤자 헛일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엄청나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할 일은 있다. 수백만 명이 기후변화 때문에 죽을 것이다. 어쩌면 수천만, 수억 명이 될 수도 있다. 숫자는 중요하다. 수억 명의 사람들, 어쩌면 수십억 명의 사람들이 기후 난민이 될 것이다. 난민들 숫자도 중요하다. 얼마나 많은 종이 사멸할지, 아이들이 밖에서 놀수 있는 날이 해마다 며칠이나 될지, 물과 식량이 얼마나 남아 있을지, 평균 기대수명이 얼마나 될지도 중요하다.이는 단지 숫자가 아니라 하나하나가 가족, 독특한 성격, 공포증, 알레르기, 좋아하는 음식, 반복되는 꿈,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노래, 자기만의 지문, 독특한 웃음을 지닌 개인 삶의 일부이기 때문에 중요하다.
4. 영혼과의 논쟁
--넌 햄버거를 포기하고 싶지 않고, 식료품점까지 차를 몰고 가는 일도, 유럽 비행기 여행도, 전기를 값싸게 사용하는 것도 포기 못해. 디너파티를 어색하게 만들고 싶지도 않고 짜증나는 사람이나, 더 나쁘게는 재수 없는 놈으로 보이기도 싫어. 넌 내키지 않아서 필요한 일을 하지 않는 거야. 그러면서도 여전히 안락하게 지내고 싶단 말이야. 그래서 문제가 무엇인지 알고 그에 대해 책을 쓰는 것만으로도 뭔가 하고 있는 거라고 자신을 설득하지.
--내키지 않는 일도 얼마든지 할 수 있고, 하고 싶은 일을 참을 수도 있어. 그런다고 네가 간디가 되지는 않아. 너 자신이 되고 어른이 되는 거지.
--회피하면 안전할 거라 착각하고 마는데 이건 우리 자손을 죽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지. 아는 거나 행동하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믿는 짓도 그렇고. 위선자가 되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어차피 불가능한데도 완벽하려고 애쓸 필요는 없어. 전혀 행동에 나서지 않는 것이야말로 용서할 수 없는 짓이지.
--고기, 유제품 달걀을 많이 먹는 사람의 반대편에는?
-채식주의자.
--아니야 동물성 제품을 많이 먹는 사람 반대편에는 동물성 제품을 너무 자주 먹지 않으려고 신경 쓰는 사람이 있어. 부담스러운 생각에서 벗어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선택지가 딱 두 개밖에 없는 척하는 거야.
--물론 희망이 있다고 느낄 때는 그렇지. 하지만 기후변화에 대해 잘 모르거나 착각하고 있는 게 아니라면 희망이 있다고 느끼지 않을걸. 희망이 주요한 동기라면 너는 무풍지대에서 노를 젓고 있는 셈이라고. 축 늘어진 돛만 쳐다보면서 돛이 부풀어 올라 부당한 짐으로 느끼는 것에서 너를 구해 주기만 기다리면서 말이야. 노아의 방주에는 돛이 없었고, 우리 배에도 없어. 아무도 아무것도 우리를 돕지 않으리라는 점을 알면 노력하기가 더 쉬워질거야.
--네가 앞으로 하게 될 모든 식사를 상상하는 대신, 지금 네 앞에 놓은 식사에만 집중해봐. 남은 평생 동안 버거를 포기하라는 말이 아니야. 이번 딱 한 번만 다른 메뉴를 주문하면 돼. 평생의 습관을 바뀌기는 어려워도 식사 한 번을 바꾸기는 그 정도로 어렵지는 않아. 시간이 지나면 그 식사들이 너의 새로운 습관이 되는 거야.
-그래. 난 똑똑하고 배려심 넘치는 사람들을 너무나 많이 알고 있어. 저 잘난 맛에 취해 지지하는 척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돈과 시간, 에너지를 쓰는 좋은 사람들 말이야. 그렇지만 아무리 설득해도 절대 식습관을 바꾸지는 않을 사람들이지.
-음식물 쓰레기를 생각할 때는 먹다 남긴 음식 말고 접시에 음식을 가져오는 과정에서 생기는 쓰레기에 초점을 맞춰야해. 고기 단 1칼로리를 생산하려고 동물에게 26칼로리를 먹여야 한다고.-유엔 식량특별조사관을 지낸 장 지글러는 10억에 가까운 인구가 굶주리는 마당에 바이오 연료에 1억 톤의 곡물을 쏟아 붓는 것은 '인류에 대한 범죄'라고 썻어. 사실 살인 범죄라고 해도 좋을 거야. 해마다 축산업자들이 부유한 사람들이 먹을 동물들한테 전 세계의 굶주린 사람들을 모두 먹일 수 있는 양의 일곱 배가 넘는 곡물을 먹이고 있다는 얘기는 아직 하지도 않았어. 이건 학살이라 불러야 한다고. 그러니깐 공장식 축산이 '전 세계를 먹여 살리는'게 아니야. 공장식 축산은 세계를 파괴할 뿐 아니라 굶주리게 만들고 있어.
5. 더 많은 삶
......하느님이 노아에게 방주를 만들라고 지시한 후 홍수를 일으키기까지 약 100년의 시간이 있었다. 긴 시간 같아 보일지 모르지만 남자 한 사람이 아들들을 데리고(현대적인 도구도, 전기도, 홈데포도 없이) 200종의 동물들을 그렇게 빨리 구해 낼 수 있을 만큼 큰 구조물을 만들다니 놀라운 일이다.
하지만 100년 동안 믿음을 계속 유지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그 세월이 노아에게 어떻게 느껴졌을지 상상해 보라. 증명할 수 없을지도 모를 일에 가진 것(자신의 노동력, 자원, 목적)을 모두 쏟아 부으면서 미친 듯이 하루하루를 보낸다고 말이다. 시간은 흘러 갈수록 신의 명령은 저기 멀리서 들려오는 이야기로 느껴지고 필요한 신념을 유지하기는 점점 더 힘들어졌을 것이다. 끊임없는 내적 대화와 자기변명이 필요했을 것이다. 어느 미래에 민간인들이 전쟁 수행을 돕기 위해 100년간 전깃불을 끄는 데 동참할까?
지구를 파괴할 존재는 우리뿐이다. 지구를 구할 존재도 우리뿐이다. 가장 절망적인 상황이 가장 희망적인 행동을 유발할 수 있지만 반대가 될 수도 있다. 우리는 지구의 모든 생명을 완전히 쓸어버릴 방법을 찾았기 때문에, 완전한 파멸이 닥치면 지구상의 생명을 다시 살려 낼 방법도 찾은 것이다. 우리가 홍수이고 방주이다.
우리의 선택에는 제한이 있고, 우리의 관습과, 가능성의 변수들을 설정하는 구조적 불의가 있다. 우리의 자유의지는 전능하지 않다. 원하는 대로 하고 살 수 는 없다. 그러나 스크랜턴이 말했듯이 적어도 고를 수 있는 것 중에서는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다. 환경 면에서 양심적인 선택을 할 수도 있다. 메뉴판에 있는 채식 음식을 주문하거나 가게에서 채식 위주로 식품을 구입하는 데 물리 법칙을 깰 필요까지는 없다. 녹색 대통령을 선출할 필요조차 없다. 그리고 개인의 결정이 궁극의 힘이라는 것이 신자유주의의 신화일지 몰라도, 개인의 결정은 아무 힘도 낼 수 없다는 것은 패배주의자의 신화이다. 큰 행동이든 작은 행동이든 다 나름대로의 힘이 있다. 전 지구적 재앙을 막아 보려는 노력에 대해, 두 가지 행동 중 하나를 포기해 버려야 하니까, 커다란 성취를 할 수 없으니까 아예 시도하지 말자고 주장한다면 비윤리적인 짓이다.
구조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말은 맞다. 화석연료에서 재생에너지로 전환해야 하며, 탄소세 같은 제도를 도입하고, 제품에 의무적으로 환경 영향 라벨을 붙이게 하고, 플라스틱 대체품을 내놓고, 차 없이 살 수 있는 도시를 건설해야 한다. 우리가 원하는 선택 쪽으로 나아가도록 우리를 밀어주는 구조가 필요하다. 서구와 제3세계의 관계를 윤리적으로 다루어야 한다. 정치 혁명이 필요할 수도 있다. 이는 개인의 힘으로는 실현할 수 없는 변화가 따라야 할 것이다. 그러나 집단 혁명도 개인들이 이끌고 성공시키며 수천 명의 개인들로 인해 강화된다. 개인의 식습관을 바꾸겠다는 그야말로 개인적인 결정을 하지 않으면 환경 파괴를 억제하겠다는 목표를 달성할 길이 없다. 물론 한두 사람이 채식 위주의 식사를 하기로 했다고 헤서 세상을 구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런 결정이 누적되어 참여자가 수백만 명이 되면 가능한 것도 사실이다.
...... 하지만 먹을거리를 몰래 사서 벽장 속에서 먹지 않는 한, 우리는 혼자 먹지 않는다. 우리가 음식을 선택하는 행위는 사회적인 전염성이 있어서 항상 주변의 다른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준다. 슈퍼마켓들은 어떤 품목이 팔리는지 기록하고, 식당들은 메뉴를 조정하고, 급식은 버려지는 음식이 무엇인지 주시한다. 우리는 '저 사람이 먹고 있는 것'을 주문한다. 우리는 가족, 공동체, 세대, 국가, 나아가 점점 더 하나의 지구라는 차원에서 먹는다. 소비에서 개인의 선택은 마비를 초래하긴커녕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복잡하고 재귀적인 역학", 다시 말해 집단행동을 촉진할 수 있다.
나는 아직도 내 식단에서 유제품과 달걀을 완전히 끊지 못했다. 내가 다른 동물이라면 욕망이 의무감을 이겼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인간이다. 인간이기에 의무가 시작된다.
우리는 죽음을 선택하는 쪽이 삶을 선택하는 쪽보다 더 편하다는 이유로 자신을 죽이고 있다. 지금 자살하는 사람들이 자살로 죽은 최초의 사람들은 아니니까. 언젠가, 어디에선가 틀림없이 어떤 천재가 우리 세계를 바꿀 기적 같은 기술을 발명해 우리가 생활을 바꾸지 않아도 될 테니까. 단기 쾌락이 장기 생존보다 더 유혹적이니까. 다른 누가 하기 전까지는 아무도 스스로 행동에 나설 수 잇는 능력을 발휘하고 싶지 않으니까. 이웃들이 하기 전까지는. 에너지 회사와 자동차 회사들이 하기 전까지는. 연방 정부가 하기 전까지는. 중국, 오스트레일리아, 인도, 브라질, 영국, 그리고 전 세계가 하기 전까지는. 매일 죽음을 지나치면서도 의식하지 못하니까. 뭔가 해야 한다고 서로에게 말한다. 마치 이말을 되풀이하기만 하면 충분할 것처럼. 뭔가 해야 한다고 자신에게 말하고는 오지도 않을 지시를 기다린다. 우리가 우리 자신의 종말을 선택하고 있다는것을 안다. 단지 믿을 수 없을 뿐이다.
슬픔과 기쁨은 서로 반대되는 것이 아니야. 반대말은 무관심이란다.
기후변화에 직면하는 데에는 전혀 다른 종류의 영웅주의가 필요하단다. 학살을 일삼는 군대를 피해 도망치거나 자식들의 끼니를 어떻게 구할지 모르는 상황보다는 훨씬 덜 무섭지만, 아마 왜 희생해야 하는지가 분명치 않기 때문에 마찬가지로 어려울거야.
부록
....."......화석 연료의 한도를 정하여 기후변화를 되돌리기란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국제 에너지 기구는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필요한 재생 에너지 기반 시설을 갖추려면 적어도 53조 달러의 비용에 적어도 20년이 걸릴 것으로 추산했습니다. 그때쯤이면 기후 변화를 되돌리기에는 너무 늦을 겁니다. 이와 달리 동물성 제품을 대체품으로 바꾼다면 온실 가스 배출을 급속히 줄이면서 동시에 땅을 비워서 더 많은 나무들이 가까운 시일 내에 대기 중 탄소 초과분을 가둘 수 있게 하는 이중의 기회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동물성 제품을 대체품으로 바꾸는 것이 너무 늦기 전에 기후변화를 되돌릴 유일한 실용적 방법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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