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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 울프 [자기만의 방, 3기니], 민음사-세계문학전집130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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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 울프 [자기만의 방, 3기니], 민음사-세계문학전집130

쭹- 2023. 6. 13. 12:04
A Room of One's Own - Virginia Woolf, 이미애 옮김
 

그래... 사람은 참 마음에 따라 생각과 행동이 달라지는게 맞다.

버지니아 울프의 등대로를 펼쳤을 때, 
정말 이 사람은 뭐지??? 뭘 말하려는 것일까?? 라는 생각만 가득해서 결국 몇 장 못 가서 덮고 말았었는데, 
레베카 솔닛의 숭배(?)하는 작가 목록 중 한 명이라는 것을 솔닛의 글을 통해 여러 번 느끼고 각인이 되어버린 지금에 읽는 이 [자기만의 방]은,,, 공감과 이해도가 가히 메가톤 급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면서 드디어 버지니어 울프가 나의 머리 속에 레베카 솔닛의 반열에 등극...
(물론 역사의 선후와는 관계가 1도 없지..ㅋㅋㅋ)
 
이 시대에 이런 선구적인 생각을 하고 강연과 논문까지 썼다니... 정말 멋진 언니야!
이게 다 그녀의 주장처럼 경제적 풍요 속(물론 지적 풍요를 포함한)에서 자랄 수 있었고, 그녀만의 방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을 꺼야. 예나 지금이나 살아가는데 인간답게, 자신답게 살기 위해서는 돈이 중요한 것 중에 하나 임이 자명하구나! 언니는 금수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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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그리하여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잔디밭을 가로질러 재빨리 걷고 있었습니다. 그 순간 웬 남자의 모습이 솟아올라 갑작스럽게 나를 가로막았습니다. 처음에는 와이셔츠에 모닝 코트를 걸친 기묘해 보이는 그 물체의 몸짓이 나를 겨냥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지요. 그의 얼굴은 경악과 분노를 담고 있었습니다. 그 순간 나를 도운 건 이성보다는 본능이었지요. 그 사람은 교구 관리였고 나는 여자였습니다. 이곳은 잔디밭이었고 인도는 저편에 있었습니다. 이곳은 대학의 특별 연구원이나 학자들에게만 허용된 장소였으며 내게 적합한 곳은 저 자갈길이었습니다. 이런 생각을 떠올리는 데는 채 한순간도 걸리지 않았지요. 내가 길로 접어들자 그 관리는 팔을 내리며 평상시의 평온한 표정을 되찾았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여기서 나는 도서관으로 이르는 문 앞에 서 있었습니다. 그리고 틀림없이 문을 열었을 겁니다. 왜냐하면 흰 날개가 아닌 검은 가운을 펄럭이며 길을 가로막는 수호천사처럼 친절한 은발의 신사가 금세 나타났으니까요. 그는 미안한 표정으로 내게 돌아가라고 손짓하며 여성이 도서관에 들어가려면 대학 연구원을 동반하거나 소개장을 소지해야 한다고 유감스럽다는 듯 나지막이 말했습니다.
  한 유명한 도서관이 한 여성에게 저주받았다는 사실쯤은 그 유명한 도서관에게는 전혀 괘념치 않을 일이겠지요. 모든 보물을 안전하게 가슴속에 간직한 채 그 장엄하고 고요한 도서관을 평온하게 잠자고 있었으며, 나와 관련해서 그것은 영원히 그렇게 잠잘 것입니다. 분노에 차서 계단을 내려오며 다신 이 메아리들을 깨우지 않으리라, 다시는 호의적인 수락을 요청하지 않으리라고 맹세했으니까요.....
 
  그 모든 여성들이 일 년 내내 일하면서도 2,000파운드를 모으기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고 3만 파운드를 마련하기 위해 온갖 일들을 다 해야만 했다는 사실을 생각하며, 우리는 비난받아 마땅할 여성의 가난에 경멸을 터뜨렸습니다. 우리의 어머니들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기에 우리에게 물려줄 재산이 없었을까요? 콧잔등에 분을 바르고 있었을까요? 상점 유리를 들여다보고 있었을까요? 몬테카를로에서 일광욕을 하며 으스대고 있었을까요? 벽난로 장식장 위에 몇 장의 사진이 있었습니다. 메리의 어머니는-만일 저것이 그녀의 사진이라면-여가 시간에 낭비를 즐겼을 겁니다.(그녀는 목사인 남편에게서 열세 명의 아이를 낳았지요.)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그녀의 명랑하고 낭비벽 있는 생활은 그녀의 얼굴에 즐거움의 흔적을 거의 남기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평범하게 생긴 노부인으로, 커다란 조개 브로치로 고정시킨 체크무늬 숄을 두르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스패니얼 한 마리에게 카메라를 주시하도록 하면서 카메라의 셔터를 누르는 순간 그 개가 움직이리라 확신하는 사람의 즐거우면서도 긴장된 표정을 지은 채 버들가지로 엮은 의자에 앉아 있었습니다. 자, 그녀가 사업계에 들어갔더라면, 인조 실크 제조업자가 되었거나 증권거래소의 실력자가 되었더라면, 그녀가 이 펀엄에 2만이나 3만 파운드를 기증했더라면, 우리는 오늘 밤 안락하게 앉아 있을 것이고, 고고학, 식물학, 인류학, 물리학, 원자의 성격, 수학, 천문학, 상대성이론, 지리학 등의 주제로 대화했을 겁니다.만일 시턴 부인과 그녀의 어머니와 그녀의 할머니가 그들의 아버지와 그 이전의 할아버지들처럼 돈을 버는 위대한 기술을 배워 자신들의 성만 사용하도록 전유된 연구원 기금, 강사 기금, 상금, 장학 기금을 설립할 돈을 남겼더라면, 우리는 여기 위층에서 단둘이 새고기와 포도주 한병으로 꽤 훌륭한 식사를 할 수 있었을 겁니다. 우리는 대우가 좋은 전문직의 은신처에서 보내는 유쾌하고 영예로운 생애를 지나친 소망이라 생각하지 않고 기대할 수 있었을 겁니다. 우리는 탐험을 하거나 글을 쓸 수도 있고, 지상의 유서 깊은 곳들을 목적 없이 돌아다닐 수도 있고, 파르테논 신전의 층계에 앉아 사색에 잠길 수도 있고, 또 아침 10시에 사무실에 나갔다가 4시 30분이면 편안히 집에 돌아와 시를 쓸 수도 있었을 겁니다....... 중략...... 큰 재산을 모으는 한편 열세 명의 아이를 낳는 것, 그것은 누구도 해낼 수 없는 일입니다. 이런 사실을 고려해 보자고 말했지요. 우선 아기가 태어나기 전에 아홉 달이 걸립니다. 그리고 아기가 태어납니다. 그러고 나면 아기를 먹이는 데 서너 달이 소모됩니다. 아기에게 먹을 것을 공급한 후에는 아기와 함께 놀아주는 데 오 년이 족히 흘러갑니다. 아이들을 길거리에서 뛰어다니게 내버려둘 수는 없을 테니까요. 러시아에서 거칠게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 광경이 별로 유쾌하지 않았다고들 얘기합니다. 또한 인간의 성격이란 한 살부터 다섯 살 사이에 형성된다고 흔히들 말하지요. 만일 내가 말한 것처럼 시턴 부인이 돈을 벌고 있었다면 당신은 유희와 말다툼에 대한 기억을 가질 수 있었을까요? 스코틀랜드와 그 청명한 공기와 케이크와 그 밖의 것들에 대해 무엇을 알 수 있었겠어요? 하지만 이런 질문을 던지는 것은 전혀 무익한 일입니다. 당신은 아예 존재하지 않았을 테니까요. 더욱이 시턴 부인과 그녀의 어머니와 그 이전의 어미니들이 막대한 재산을 축적하고 대학과 도서관의 초석 아래 재산을 기부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질문도 무익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첫째 그들이 돈을 버는 것은 불가능했으며, 둘째 돈 버는 일이 가능했다 하더라도 자신들이 번 돈을 소유할 권리가 법적을 인정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시턴 부인이 자기 자신의 돈을 한 푼이라도 가질 수 있게 허용된 지 이제 겨우 사십팔 년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그 이전의 수백 년 동안 그것은 남편의 재산이었습니다.....
 
  ......확실히 우리의 어머니들은 이 모든 것에 비견될 만한 그 어떤 것도 우리에게 제공하지 못했지요. 3만 파운드를 긁어모으는 일이 어렵다는 사실을 알게 된 우리의 어머니들, 세인트앤드루스에서 목사에게 열세 명의 아이를 낳아준 우리 어머니들은 말입니다.
  이렇게 해서 나는 숙소로 돌아갔으며 어두운 거리를 걸어가면서 하루 일과를 마친 사람들이 흔히 그러듯 이것저것 골똘히 생각했지요. 시턴 부인이 우리에게 물려줄 돈이 없었던 것은 어째서인가, 그리고 가난이 마음에 어떤 영향을 비치는가, 또한 부는 마음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를 숙고했습니다. 그리고 그날 아침에 보았던, 모피 술을 어깨에 늘어뜨린 노신사들을 생각했습니다. 누군가 휘파람을 불면 그들 중 하나가 달려온다는 사실을 기억했습니다. 교회당에서 울리던 오르간과 도서관의 닫힌 문을 생각했습니다. 잠긴 문밖에 있는 것이 얼마나 불쾌한 일인가를 생각했고, 어쩌면 잠긴 문 안에 있는 것은 더욱 나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한 성(性)의 안정과 번영, 다른 성의 가난과 불안정을 생각했고, 작가의 마에 전통이 미치는 영향과 전통의 결핍이 미치는 영향을 생각하면서, 마침내 그날의 논의와 인상들, 분노와 웃음과 함께 그날의 구겨진 껍질을 말아서 울타리 밖으로 내던져 버려야 할 시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2장
 
......왜 남자들은 포도주를 마시고 여자들은 물을 마시는가? 무슨 이유로 남성은 그렇게 부유하고 여성은 그다지도 가난한가? 가난은 픽션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예술 작품을 창조하는 데 어떤 조건들이 필요한가? 수많은 의문들이 동시에 쏟아져 나왔지요......
 
......그리고 명백히-여기서 나는 M(male)이라는 글자를 염두에 두고 찾아보았습니다-남성에게만 한정된 현상이었지요. 여성들은 남성에 대한 책을 쓰지 않습니다. 이것은 안도감을 느끼며 환영하지 않을 수 없는 사실이지요. 왜냐하면 내가 우선 여성에 관해 남성이 쓴 책을 모두 읽고 그다음에는 남성에 관해 여성이 쓴 책을 읽어야 한다면, 내가 그것을 모두 읽고 글을 쓰는 동안 백 년에 한 번 꽃이 핀다는 알로에 꽃을 두 번은 보아야 할테니까요....
 
......그렇다면 이 이상한 불균형의 원인이 무엇일까 생각했습니다. 이 목록으로 판단컨대, 남성이 여성에게 유발하는 흥미보다 여성이 남성에게 불러일으키는 흥미가 더 큰 것은 도대체 어찌된 일일까요? 그것은 상당히 신기한 일이었지요. 나는 더 나아가 여성에 관한 책을 쓰면서 시간을 소비한 남자들의 일상을 상상하기에 이르렀지요. 그들은 늙었을까 젊을까, 결혼을 했을까 아니면 하지 않았을까, 딸기코일까 곱사등이일까. 어쨌든 스스로가 그러한 관심의 대상이라고 느끼는 것은 막연하나마 우쭐하게 만드는 데가 있습니다. 만일 그런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이 불구자나 병자만이 아니라면 말이지요.
 
......동시대를 살았던 두 예리한 관찰자들이 보여주는. 전적으로 상반되는 의견이지요. 여성에게 교육받을 능력이 있는가 없는가? 나폴레옹은 여성이 교육받을 수 없다고 행각했지만 존슨 박사는 정반대로 생각했습니다. 그들이 영혼을 가지고 있는가 그렇지 않은가? 어떤 야만인들은 여성에게 영혼이 없다고 말합니다. 반면에 어떤 사람들은 여성이 반쯤 신적인 존재라고 주장하며 그러한 이유로 그들을 숭배합니다. 어떤 박식한 사람들은 여성의 두뇌가 더 얄팍하다고 주장하는 반면, 여성의 의식이 더욱 심오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괴테는 영성을 찬미했고, 무솔리니는 여성을 경멸합니다. 어디를 돌아보든 남성은 여성에 관해서 생각했고, 그것도 서로 다르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우리이 나태함에서, 우리의 헛된 공상에서 가라앉았던 진실이 때로는 표면에 떠오르기도 합니다......
 
......그것은 여성의 정신적, 도덕적, 신체적 열등성에 대한 그 교수의 진술이었지요. 심장이 뛰고 뺨에서 열이 나며 분노로 얼굴이 붉어졌습니다. 그것은 어리석긴 하지만 그리 주목할 만한 현상은 아니었지요. 거칠게 숨을 쉬며 기성품 넥타이를 매고 있고 두 주일간 면도하지 않은 조그만 남자(나는 내 옆의 학생을 보았지요.)보다 자기 자신이 천성적으로 열등하다는 말을 듣고 싶지 않은 법이니까요. 사람들에겐 어떤 어리석은 허영심이 있습니다.......이내 나의 분노는 설명이 되었고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호기심이 남았지요. 그 교수님들의 분노를 어떻게 설명할까? 왜 그들은 화가 났을까? 왜냐하면 이 책들이 남긴 인상을 분석해 볼 때 거기엔 항상 열기가 존재했으니까요.....
 
  나는 책상 위에 산더미처럼 쌓인 책들을 살펴보며 그 이유가 무엇이든지 간에 이 책들은 모두 내 목적에 무가치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책들이 인간적으로는 교훈과 흥미와 권태와 피지 섬 주민들의 관습에 대한 기이한 사실들로 가득 차 있을 지 모르지만 과학적으로는 무가치했습니다. 그것들은 진실의 흰빛이 아니라 감정의 붉은 빛으로 쓰였으니까요. 그러므로 그것들은 중앙 탁자로 되돌아가서 거대한 벌집 속 각각의 방으로 반송되어야 합니다. 내가 오전 내내 일하면서 얻어낸 것은 분노라는 하나의 사실이었지요. 그 교수님들(나는 그들을 총괄하여 이렇게 말합니다.)은 분노하고 있었습니다. 책을 돌려주고 나서 왜냐고 자문했지요. 
 
......영국이 가부장제의 지배하에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제정신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 교수님의 지배력을 간파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권력과 돈과 영향력은 그의 것입니다. 그는 그 신문의 소유자이고 편집장이며 부주필입니다. 그는 외무대신이며 재판관이고 크리켓 선수입니다. 그는 경주마와 요트를 소유하고 있고 주주들에게 200퍼센트의 배당금을 지급하는 회사의 중역입니다. 그는 자기가 운영하는 대학과 자선단체에 수백만 파운드를 남겼습니다. 그는 여배우를 공중에 달아맸습니다. 그는 고기 자르는 도깨에 붙은 털이 인간의 것인지 아닌지 결정할 것입니다. 살인자에게 무죄를 선고해 석방하거나 아니면 유죄를 선고해 목매다는 것도 그 사람입니다. 안개를 제외하고는 모든 것을 지배할 수 있는 듯합니다. 그런데도 그는 화가 났습니다. 이런 점에서 나는 그가 화났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지요. 여성에 대한 그의 글을 읽으며 나는 그의 글이 아니라 그 사람 자신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한 논자가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공정하게 논의를 펼칠 때, 그는 오로지 그 논의만 생각하고 있고 따라서 독자들도 그 논의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만일 그가 여성에 관해 공정하게 썼더라면, 자신의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 누구도 논박할 수 없는 증거를 동원했다면, 그 결과가 다른 게 아닐 이것이기를 바란다는 흔적을 보이지 않았더라면, 독자도 분개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독자는 그 주장을 수긍했겠지요. 완두콩은 녹색이고 카나리아는 노란색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듯 말입니다. 따라서 나도 그렇지 하고 말했을 테지요. 그러나 그가 분개했기 때문에 나도 분노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권력을 가진 사람이 분개하는 것은 불합리해 보인다고 나는 석간신문을 넘기며 생각했습니다. 아니면, 분노란 권력을 쫓아다니는 친숙한 유령일까요? 예를 들어 부자들은 가난한 사람들이 자신들의 재산을 빼앗고 싶어 한다고 의심하기 때문에 종종 분개합니다. 교수님들, 아니 더 정확하게 부르자면 가장들은 부분적으로 그런 이유 때문에 분개하겠지만, 또 부분적으로는 겉으로 명백히 드러나지 않는 이유 때문에 분개합니다. 어쩌면 그들은 전혀 '분노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실제로 사적인 인간관계에서 종종 그들은 여성에게 헌신적으며 모범적인 찬미자들입니다. 그 교수가 여성의 열등함에 대해 좀 지나치게 힘주어 주장했을 때 어쩌면 그는 여성의 열등함보다는 자기 자신의 우월함이 손상되지나 않을까 더 염려하고 있었을 겁니다. 그것이 그에게는 무한한 가치를 지닌 희귀한 보석이었기에 대단히 격렬하게 그리고 지나치게 강조하면서 간직해 온 것이지요. 어느 성에게나 삶은 힘들고 어려운 영속적인 투쟁입니다. 그것은 어마어마한 용기와 힘을 요구합니다. 그리고 우리같이 환상을 지닌 피조물에겐 그것은 아마 다른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에 대한 자신감을 필요로 할 겁니다. 자신감이 없다면 우리는 요람에 누운 아기와 마찬가지이지요. 이 측정할 수 없이 가벼운, 그러나 무한한 가치가 있는 자질을 어떻게 해야 가장 신속하게 획득할 수 있을까요? 다른 사람들이 자신보다 열등하다고 생각함으로써 가능하겠지요. 자기 자신에게 다른 사람보다 천성ㅈ거으로 우월한 점(재산이거나 신분, 곧은 콧날이거나 롬니가 그린 조부의 초상화일 수도 있겠지요.)이 있다고 느낌으로써 가능할 겁니다. 그러므로 통치해야 하고 정복해야 할 가장에게 있어서 다수의 사람들, 사실 인류의 절반이 자신보다 열등하다고 느끼는 것은 막대한 중요성을 가질 겁니다. 그것이 실상 그의 권력의 중요한 원천 중 하나겠지요.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나폴레옹과 무솔리니는 여성의 열등함을 아주 힘주어 강조합니다. 만일 여성이 열등하지 않다면 거울은 남성을 확대시키기를 그만둘 테니까요. 그것은 여성이 남성에게 무척 빈번히 필요한 이유를 설명하는 데 일면 도움이 됩니다. 남성이 여성의 비판을 받고 안절부절못하는 것도 설명해 주지요. 여성이 남성들에게 이 책은 좋지 않다거나 이 글은 형편없다거나 그 밖의 어떤 비평을 할 때마다, 똑같이 비평하는 남성들에의해 야기되는 것보다 더 큰 분노를 일으키고 더 큰 고통을 준다는 사실도 설명해 줍니다. 만일 여성이 진실을 말하기 시작한다면, 거울 속의 형체는 오그라들 것이고 삶에 대한 적응력도 감소될 것입니다.... 중략...거울의 환경은 활력을 충전시키고 신경조직을 자극하기 때문에 더없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것을 빼앗아보십시오. 그러면 남성은 코카인을 빼앗긴 마약중독자처럼 죽을 것입니다. 
 
......내 지갑에는 10실링짜리 지폐가 한 장 더 있었지요. 나는 그것을 눈여겨보았습니다. 왜냐하면 내 지갑에서 10실링짜리 지폐가 자동적으로 나올 수 있다는 것은 아직도 숨을 멎게 할 정도로 놀라운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지갑을 열면 그곳엔 지폐가 있지요. 나와 이름이 같다는 이유로 한 숙모님이 물려준 유산에서 나오는 몇 장의 종잇조각에 대한 대가로 사회는 닭고기와 커피, 침대와 숙소를 제공해줍니다.
  내 숙모님 메리 비턴은 봄베이에서 바람을 쐬려고 말 타러 나갔다가 낙마하여 죽었습니다. 내가 유산을 받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것은 여성에게 투표권을 부여하는 법안이 통과되던 당시의 어느날 밤이었습니다. 한 변호사의 편지가 우편함에 떨어졌으며 그것을 열어보고 내게 매년 500파운드가 지급되도록 재산이 상속되었다는 사실을 알았지요. 둘-투표권과 돈-중에서 돈이 더 무한히 중요해 모였다는 사실을 고백해야겠지요.....고정된 수업이 사람의 기질을 엄청나게 변화시킨다는 사실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라고요. 이 세상의 어떤 무력도 나에게서 500파운드를 빼앗을 수 없습니다. 음식과 집, 의복은 이제 영원히 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노력과 노동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증오심과 쓰라림도 끝나게 됩니다.. 나는 누구도 미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아무도 나에게 해를 끼칠 수 없으니까요. 또 누구에게도 아부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가 나에게 줄 것이 없기 때문이지요. 이렇게 하여 나는 스스로 인류의 다른 절반에 대해 아주 미세하나마 새로운 태도를 취하게 되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중략......일 년에 500파운드만 있으면 햇빛을 받으며 살아가기에 충분하다는 것이 엄연한 사실인데 말이지요. 이러한 본능은 가슴에 품어두기엔 불쾌한 것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케임브리지 공작의 동상을 바라보면서, 지금까지 받아본 적이 없었을 뚫을 듯한 시선으로 특히 그의 삼각모에 꽂힌 깃털을 바라보면서 숙고했지요. 이런 본능은 삶의 조건에서, 다시 말해 문명의 결핍에서 비롯되는 것들이라고요. 내가 이러한 결함들을 인식하게 됨에 따라 두려움과 쓰라림은 점차 완화되어 연민과 관용으로 바뀌어갔습니다. 그리고 일이 년이 지나자 연민과 관용도 사라지고 가장 커다란 해방, 즉 사물을 그 자체로 생각하는 자유가 생겨났습니다. 예를 들면 저 건물을 내가 좋아하는가 아닌가? 저 그림은 아름가운가 그렇지 않은가? 내 생각에 그것이 좋은 책인가 나쁜 책인가? 진정 숙모님의 유산은 내게 하늘의 베일을 벗겨주었고, 밀턴이 우리에게 영원히 숭배하라고 천거한 신사의 크고 위압적인 모습 대신 훤히 트인 하늘을 보여주었습니다.
 
  누군가가 어느 순간에 어떤 재능의 가치를 말할 수 있다 하더라도 이 가치들은 변화할 것입니다. 백 년이 지나면 이 가치들은 완전히 변하겠지요. 더욱이 앞으로 백 년이 지나면, 집 문 앞에 이르러 생각하건대, 여성은 보호받는 성이기를 그만둘 것입니다. 필연적으로 그들은 한때 자신들에게 허용되지 않았던 모든 활동과 힘든 작업에 참여할 것입니다. 아이 보는 여자는 석탄을 운반할 것이고 가게 주인 여자는 기관차를 운전할 것입니다. 여성이 보호받는 성이었을 때 관찰된 사실에 근거를 둔 모든 가설들은 사라질 것입니다. 예를 들어 여성과 목사와 정원사가 다른 사람들보다 장수한다는 가설 같은 것 말입니다. 그 보호막을 제거하고, 여성에게 똑같은 활동과 작업을 접하게 하고, 여성을 군인이나 선원, 기관사, 부두 노동자로 만들어보십시오. 그러면 사람들이 "오늘 비행기를 보았어."라고 과거에 말했든 "오늘 여자를 한 명 보았어.'라고 할 정도로 여자가 남자보다 젊은 나이에, 훨씬 빨리 죽게 될지도 모르는 일 아니겠어요? 여성이 더 이상 보호받는 처지에 있지 않게 되면 어떻게 될까 하고 나는 현관문을 열면서 생각했지요. 그러나 이 모든 생각들이 내 강연 주제인 '여성과 픽션'하고 무슨 관련이 있을까요? 나는 안으로 들어가면서 자문했지요.
 
 
3장
 
  그리하여 아주 기묘하고 복합적인 존재가 생겨납니다. 상상에 있어서 여성은 더없이 중요한 인물이지만, 실제로는 전적으로 하찮은 존재입니다. 시에서는 첫 장에서 마지막 장까지 여성의 존재가 고루 퍼져 있지만, 역사에서는 전혀 존재하지 않습니다. 픽션에서 그녀는 왕과 정복자들의 삶을 지배하지만, 실제로는 그녀의 손가락에 강제로 반지를 끼워준 어느 부모의 아들에 딸린 노예였습니다. 문학에서는 영감이 품부한 말들, 심오한 생각들이 그녀의 입술에서 흘러나옵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그녀는 거의 읽을 줄 모르고 철자법도 모르며 남편의 재산에 불과했습니다.......중략.....엘리자베스 시대의 여성에게 이 방법을 적용해 보려고 하는 순간, 한 부분의 조명이 부족합니다. 즉 사실의 결핍으로 가로막히게 되지요. 그녀에 대한 세세한 사실, 더할 나위 없이 진실하고 실제적인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하니까요. 역사는 여성을 거의 언급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다시 서가를 바라보면서 생각하건대 내가 유감스러워하는 것은 18세기 이전의 여성들에 대해서 알려진 바가 전혀 없다는 사실입니다. 내 마음속에서 이리저리 굴려볼 만한 모델이 없는 것이지요. 여기서 나는 엘리자베스 시대에 여성들이 왜 시를 쓰지 ㅇ낳았는지를 묻고 있습니다만 그들이 어떤 교육을 받았는지, 글 쓰는 법을 배웠는지, 자기만의 방이 있었는지, 스물한 살이 되기 전에 아이를 낳은 여자는 얼마나 되었는지, 간단히 말해 그들이 아침 8시부터 밤 8시까지 무엇을 했는지 모르고 있습니다. 그들에겐 분명히 돈이 없었지요.
 
  그러나 어쨌든 간에 나는 서가에 꽂힌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을 보면서 그 주교가 최소한 이런 점에서는 옳았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즉 어떤 여성이 셰익스피어시대에 셰익스피어의 희곡에 버금가는 작품을 쓴다는 것은 완전히 그리고 전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사실입니다. 셰익스피어에게 놀랄 만한 재능을 가진 누이, 이를테면 주디스라 불리는 누이가 있었다면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요-사실을 얻기 어려우니까-상상해 보도록 하지요. 셰익스피어 자신은 문법학교에 다녔음이 거의 확실합니다. 그의 어머니가 유산 상속인이었으니까요. 그곳에서 그는 라틴어와 문법 원칙, 논리학을 배웠을 겁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그는 토끼를 밀렵하고 사슴을 사냥한 거친 소년이었으며, 이웃에 사는 여자와 지나치게 이른 나이에 결혼해야 했고, 그 여자는 적절한 시기보다 훨씬 이르게 아기를 낳았습니다. 그 엉뚱한 짓으로 해서 그는 출세의 길을 찾아 런던으로 갔지요. 그는 연극을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무대 출입구에서 말을 돌보는 시종으로 연극 생활을 시작했지요. 곧 그는 극장에서 일거리를 얻게 되었고 성공적인 배우가 되었으며 우주의 중심에서 살았습니다. 모든 사람을 만나고 모든 사람을 알게 되었으며 배우로서의 기술을 익히고 길거리에서 재치를 발휘하고 심지어 여왕 궁전에도 접근하기도 했지요. 그동안 특별한 재능을 가진 그의 누이는 집에 남아 있었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녀도 셰익스피어만큼이나 모험심이 강하고 상상력이 풍부하며 세계를 알고 싶은 열망에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학교에 다니지 못했지요. 그녀에게는 호라티우스와 베르길리우스를 읽을 기회는 커녕 문법과 논리학을 접할 기회조차 없었습니다. 그녀는 때때로 책을, 아마도 오빠의 책이었겠지만, 집어 들고 몇쪽을 읽었지요. 그러면 그녀의 부모님이 들어와서 양말을 꿰매거나 국을 끓이는 데 신경을 쓰라고, 책이나 논문 따위를 붙들고 멍하니 시간을 보내지 말라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호되게 나무랐지만 그것은 선의에서 나온 꾸지람이었을 겁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여자들의 삶의 조건이 어떠한지를 알고 있는 현실적인 사람들이었으며, 딸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그녀는 아버지에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존재였을 겁니다. 그녀는 아마 사과 창고에서 은밀히 몇 쪽을 휘갈겨 썼겠지요. 하지만 조심스럽게 숨기거나 불에 태웠지요. 그녀는 십 대를 벗어나기도 전에 이웃에 사는 양털 중개상의 아들과 약혼하게 되었습니다. 자신은 그 결혼이 혐오스럽다고 소리쳤지요. 그 때문에 그녀는 아버지에게 심하게 맞았습니다. 그러고 나서 그는 딸을 더이상 꾸짖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 자신의 마음을 상하게 하지 말라고, 결혼 문제로 더 이상 망신시키지 말라고 사정했습니다. 그녀에게 목걸이와 멋진 페티코트를 주겠다고 말했지요. 그의 눈에는 눈물이 어렸습니다. 그녀가 어떻게 아버지의 말을 거역할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그녀가 그를 비탄에 잠기게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그녀 자신의 강렬한 재능이 그녀를 몰아세웠습니다. 그녀는 조그마한 짐을 꾸려 어느 여름날 밤 밧줄을 타고 내려와 런던으로 가는 길에 섰습니다. 그녀는 열일곱 살도 채 되지 않았지요. 산울타리에서 노래하는 새들도 그녀보다 더 음악적일 수는 없었을 겁니다. 그녀는 오빠와 똑같은 재능 즉 단어의 음조에 대한 예리한 상상력을 가지고 있었지요. 셰익스피어와 마찬가지로 그녀는 연극에 소질이 있었습니다.그녀는 무대 출입구에 서서 연기를 하고 싶다고 말했지요. 남자들은 그녀의 면전에서 폭소를 터뜨렸습니다. 감독-뚱뚱하고 입이 가벼운 사람이었는데-은 너털웃음을 웃었습니다. 그리고 여자가 연기를 하는 것은 푸들이 춤추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내뱉고는 어떤 여자도 배우가 될 수 없다고 단언했지요. 그가 넌지시 암시했는데, 여러분은 그가 무슨 말을 했는지 상상할 수 있을 겁니다. 그녀의 재능은 훈련을 받을 수 없었지요. 그녀가 선술집에서 저녁을 먹거나 한밤중에 길거리를 배회할 수 있었을까요? 하지만 그녀의 재능으 ㄴ픽션을 추구했고, 남자들, 여자들의 삶과 그들의 생활 방식을 풍부하게 보고 관찰하기를 갈망했습니다. 마침내-그녀는 아주 젊었고 기묘할 정도로 시인 셰익스피어와 얼굴이 닮았으며 똑같이 회색 눈과 둥근 이마를 가졌기에-배우 감독인 닉 그린이 그녀를 동정했습니다. 그녀는 그 신사의 아이를 임신했음을 알게 되었고 그래서 (시인의 마음이 여자의 몸속에 갇혀서 엉망으로 뒤엉켜 있을 때 그것이 분출할 열기와 격력함을 누가 측정할 수 있겠습니까.) 어느 겨울 밤 스스로 목숨을 끊었으며 지금은 엘리펀트 앤 캐슬 바깥쪽의 버스 정류장 근처 교차로 어딘가에 묻혀 있습니다.
  만일 셰익스피어 시대에 한 여성이 셰익스피어의 재능을 가지고 있었더라면, 이야기가 아마 이렇게 전개되었을 것입니다.
 
  내가 지어낸 셰익스피어 누이의 이야기를 검토하면서 생각하건대 그 이야기에서 사실이라 할 수 있는 점은, 16세기에 태어난 위대한 재능을 가진 여성은 틀림없이 미치거나 총으로 자살하거나 또는 마을 변두리의 외딴 오두막에서 절반은 마녀, 절반은 요술쟁이로 공포와 조롱의 대상이 되어 일생을 끝마쳤을 거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시적 재능을 발휘해 보려고 시도한 천부적 재능을 지는 여성은 다른 사람들에 의해 방해받고 저지되었으며 자기 내면에서 상충하는 충동들로 고통받고 갈가리 찢겨서 틀림없이 건강과 온전한 정신을 잃었을 거라고, 심리학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어도 확신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4장
 
  벤 부인은 유머와 활력, 용기 라는 평민의 미덕을 모두 갖춘 중산층 여성 이었지요. 그녀는 남편의 죽음과 몇 가지 불행한 사건들로 인해서 자신의 기지로 생계를 꾸려가야만 했습니다.  그녀는 남자들과 대등하게 일해야 했지요. 열성히 일함으로써 그녀는 먹고살 만큼 충분히 벌었습니다. 그러한 사실이 지닌 중요성은 그녀가 실제로 쓴 것들, [수천의 순교자들을 만들었네] 와 [사랑은 환상적 승리 안에 앉았지] 같은 그 빛나는 작품들 보다 더욱 귀중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여기에서 마음의 자유 아니, 시간이 경과하면 마음 내키는 대로 자유로이 쓸 수 있으리라는 가능성이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이제 에이프라 벤이 그 일을 해냈으므로, 소녀들은 부모에게 만할 수 있을 겁니다. "저에게 용돈을 주실 필요 없어요. 저도 제 펜으로 돈을 벌 수 있어요" 라고 말이지요. 물론 다가올 여러 해 동안 그 말에 대한 대답은 "그래, 에이프라 벤같이 살겠다고?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 " 일 것이고, 전보다 더욱 빨리 꽝 소리를 내며 문이 닫힐 것입니다.남성이 여성의 정조에 두는 가치와 그것이 여성의 교육에 미치는영향이라는 지극히 흥미로운 주제가 예서 논의의 대상으로 등장하는데, 만일 거턴이나 뉴넘의 어느 학생이라도 그 문제를 깊이 파고든다면 상당히 흥미로운 책을 제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스코틀랜드의 황무지에서 곤충이 득실거리는 가운데 다이아몬드로 휘감고 앉아 있는 레이디 더들리가 그 책의 권두 삽화로 알맞겠지요. 일전에 레이디 더들리가 죽었을 때 《타임스》는 더들리 경에 대해 이렇게 보도했습니다. "세련된 취향과 여러 가지 소양이 풍부한 사람으로서 관대하고 후했지만, 변덕스럽고 전제적이었다. 그는 스코틀랜드의 고지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사냥 막사에서도 자신의 아내에게 정장을 강요했다. 그는 그녀를 찬란한 보석들로 감싸주었다. " 그런데 더들리 경은 뇌졸중을 일으켰고 레이디 더들리는 그를 간호하며 그 이후 계속 탁월한 능력으로 그의 재산을 관리했습니다. 그러한 변덕스러운 전제군주는 19세기에도 여전히 존재했지요.
  그러나 다시 돌아갑시다. 에이프라 벤은 어쩌면 기분 좋은 여성적 자질들을 희생했을지 모르지만, 글을 씀으로써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을 입증했습니다. 그리하여 점차적으로 글을 쓰는 것은 단순히 어리석음 이나 분열된 마음의 징후가 아닌 실제적인 중요성을 가진 것으로 받아들여지게 되었지요. 남편이 죽을 수도 있고 어떤 재앙이 가족을 덮칠 수도 있습니다. 18세기에 이르면서 수백 명의 여성들이 번역을 하거나 저질 소설들을 숱하게 씀으로써 용돈을 보태거나 가족을 돕게 되었지요. 그 소설들은 교과서에 기록 되어 있지는 않습니다만 채링크로스 가의 4페니짜리 상자에서 골라 뽑을 수 있습니다. 18세기 후반 여성들 사이에서 드러난 지극히 활발한 마음의 행위-대화와 모임, 셰익스피어에 관한 에세이 쓰기, 고전 번역 등-는 여성이 글을 씀으로써 돈을 벌 수 있다는 엄연한 사실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대가가 지불되지 않았을 때에는 격박했던 일이 돈으로 위엄을 갖추게 됩니다. "끼적거리려는 참을 수 없는 욕망을 가진 블루스타킹"을 비웃는 것은 여전히 당연한 일이었겠지만, 그들이 지갑 안에 돈을 넣을 수 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었지요. 그리하여 18세기 말 무렵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데, 내가 만일 역사를 다시 쓴다면 십자군이나 장미전쟁보다 그것을 더 충실하게 묘사하고 더 중요하게 생각할 것입니다. 즉 중산층 여성들이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이지요. 만양 [오만과 편견]이 중요하다면 그리고 [미들마치]와 [빌렛], [폭풍의 언덕]이 중요한 작품들이라면 시골 저택에서 아첨꾼들과 사절판 책 속에 파묻혀 있던 외로운 귀족들만이 아니라 일반 여성들이 글을 쓰게 되었다는 것은 내가 한 시간의 강연에서 피력할 수 있는 정도를 넘어서는 훨씬 중요한 사실일 것입니다. 
 
19세기 초 중산층 가족은 오직 하나의 거실을 공유했다는 사실과 관련이 있을까요? 만일 여성이 글을 썼다면 공동의 방에서 써야만 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