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루스 채트윈 [파타고니아], 현암사

이 책 역시 남미 좋아하는 친구가 읽어보라고 빌려준 책.

책을 펼치면 서문이 먼저 나오는데, 이 서문을 읽다가 책 참 별로다... 라는 마음이 들었다.

몇 일간 앞 페이지를 열었다 덮다 하다가 겨우 서문을 다 읽었는데, 이 서문은 브루스 채트윈이 아니라 다른 작가가 쓴 게 아닌가!!!

 

나, 참....

서문이나 책을 소개하는 글이 책 내용이나 책에 대한 기대감을 이렇게 무너뜨릴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울 뿐이다!

그것도 이 작가의 전기를 쓴 사람이라니!!! 그가 쓴 전기가 얼마나 노잼일까 생각해본다 ㅋㅋㅋㅋㅋ

 

여튼! 대반전은 작가의 글은 매력이 있다는 것이다. 풍경이나 얼굴 생김새 등을 그림 그리듯이 글로 묘사하는 것은 정말 탁월한 듯! 근데 이 책 때문에 파타고니아로의 여행 붐이 일었다는 것은...? 음...? 하긴 몇십년 전의 일이니깐 그때 사람들의 생각이랑 내 생각이랑 다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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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 사람, 풍경 등을 온갖 감각을 이용하여 그림 그리듯, 읽는 사람이 느낄 수 있도록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이 참으로 멋지다.

맘에 드는 부분들...

 

 

  "일하기보다는 아사도를 먹으면서 이야기나 나누는 게 낫겠어요."

  파웰 부인은 그렇게 말하고는 헛간으로 가서 빨갛고 하얀 체크무늬춘으로 식탁을 덮었다. 에디가 불을 피웠고, 에디의 아버지는 지하 저장실로 내려갔다. 그는 껍질을 벗겨 천장에 매달아둔 양의 몸통에서 한 부분을 뚝 떼어낸 뒤 지방을 발라내 양치기 개에게 던져줬다. 이어 십자가 모양의 쇠꼬챙이로 고깃덩어리를 꿴 다음 꼬챙이의 한 끝을 땅바닥에 꽂아 불 위에 비스듬이 걸쳐놓았다. 고기가 다 익자 우리는 먹기 좋을 만큼씩 베어내 식초, 마늘, 칠리, 오레가노로 만든 살무에라라는 소스에 찍어 먹었다. 

  파웰 부인이 말했다.

  "살무에라는 고기의 지방 성문을 녹여줘요."

  도수가 약한 와인인 비노 노사도가 반주로 나왔고, 앨런 파웰은 근처 사막에서 자라는 약초들에 관해 얘기했다.

 

27. 집 벽을 덮은 널빤지들에 딱총나무 꽃들이 머리를 비벼대고 있었다.

 

31. 그들의 결혼은 두 개의 실패가 하나로 결합한 것과도 같아서, 두 사람은 세상 끝으로 표류해 갔다.

 

32. 비가 내리기 전에 바람이 먼저 골짜기에 비 냄새를 몰고 왔다.

 

40. 언덕 serro de los indios

 

43. 싸락눈이 정원의 까치밥나무 덤불을 두드리고 있었다.

 

44. 17c의 탐험가 존 나버러 경도 우리와 똑같은 자리에 서서 펭귄들을 보고나서 묘사하기를, "수많은 펭귄이 하얀 앞치마를 두른 어린아이들처럼 똑바로 서 있다"라고 했다. 

  내게 앨버트로스와 펭귄은 절대로 죽이고 싶지 않은 새들이다.

 

45. Xanadu 도원경

  '빙하가 갈라지면서 으르렁거리고 포효하고 울부짖었다'라는 시구 (존 데이비스 [늙은 수부의 노래] 61행)

 

47. 화석이 된 굴의 진줏빛 껍질들이 달빛을 받아 환한 빛을 발했다. 호수에서 검은 실루엣의 오리들이 은색 파물을 일으키며 조용히 헤엄치고 있었다. 나는 그집에서 새어나오는 황금빛 빛줄기를 따라 포플러 숲으로 들어갔다. 개 한 마리가 짖어댔다. 대문이 열렸고, 고기 한 점을 입에 문 개는 찍소리 않고 살그머니 사라졌다.

 

51. 그저 입만 살아 나불대기 좋아하고 양심이라고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으며 아무나 닥치는 대로 물어뜯으려 드는

 

53. 검고 하얀 돌고래 떼가 황금빛 바다에서 춤을 췄다.

 

58. 그녀는 온실속의 화분이나 묘판에서 부자연스럽게 자라는 어린 관목들을 딱하게 여겼다. 그들이 산이나 숲 속에서 제먹대로 자라는 광경을 그리면서 혼자 즐거워했다. 그리고 상상속에서나마 그 관목들의 원산지를 자유롭게 여행하곤 했다.

 

64. 언어를 처음 사용하는 사람들은 자기네 주위 환경을 이루고 있는 사물들을 압착, 가공해서 은유를 만들어내 추상적인 개념들을 표현하는 데 사용하곤 한다.

 

66. 저 앞에 숲이 울창한 하버턴 산이 솟아 있고, 그 능선 너머로 안개에 가려 흐릿한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골짜기 밑바닥을 요란하게 흐르는 물소리가 먼저 들리고 나서 잠시 후 강이 보였다.

 

72. put your nose to the grindstone - 열심히 공부해라

 

88. 번민으로 수척해진 얼굴에 두려움 어린 눈빛을 한, 헝클어진 머리를 뒤로 빗어넘긴...